한마디로 엉망징창이었지만 돌아보니 감사 뿐
시원하게 말아먹은 수능에서 유일하게 좋은 점수가 나왔었던 영어와 수학. 둘 다 80점 만점에 55점 정도를 기록해서 아슬아슬하게 지원했던 모든 대학에 합격했었다. 하지만 가군의 K국립대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끝내 가지 못했고, 결국 집에서 통학하는 쪽으로 결정되어 2004년 국립창원대에 입학하였다.
전공은 음악 쪽이었으나 미국행이라는 거대한 계획이 있었기에 남들에게는 쉬쉬하면서 음악과 학생들이 기피하는 영어교양수업도 들었고, 교내에 있는 어학교육원도 다녔었다. 이러한 나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었지만 나는 이 모든 걸 그저 묵묵히 감수해야만 했었다.
그렇다고 영어 수업을 듣는 게 마냥 좋은 것도 아니었다. 수업을 따라가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수업 내용을 이삼십 퍼센트 정도만 이해를 했으니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을는지 아마 상상이 되실 것이다. 당연히 학점도 성적도 좋게 나올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어학교육원 수업도 몇 번 땡땡이치고, 텅 빈 강당형 강의실에 홀로 들어가 아침잠을 쿨쿨 자기도 했었다. 강의신청을 놓친 나를 위해 직접 오피스까지 찾아가 나를 넣어준 고마운 캐나다 원어민 선생님의 은혜도 완전히 져버린 채 말이다.
무엇보다도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바로 위의 나무위키에도 기재되어 있는 '잉글리시 라운지'였다. 영어수업을 교양으로 듣던 전공으로 듣던 무조건 여기에서 한 학기당 몇 시간 이상을 반드시 보내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무조건 영어만 써야 하고 한국어 쓰면 벌점을 받게 된다. 당시 정말 어떻게 시간을 때웠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아찔(?)하다.
여하튼 겨우겨우 졸업하고 미국에 이십 년 가까이 살고 있다 보니, 한 번씩 이런 에피소드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전공은 후회 중이지만 학교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불만이 없기에, 만약 한국에 한번이라도 나갈 기회가 생기게 된다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예술대 건물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한 채 진짜 딱 신축도서관(내 다닐 때에는 없었으니 나에게는 신축임)이랑 잉글리시 라운지만 갈 거라고 가족들에게 종종 말하곤 한다.
미국에서 평생교육을 비롯하여 나만의 방법으로 영어실력을 쌓게 되다 보니 이제는 확실히 옛날보다 이전보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오죽하면 MBTI 성격까지 바뀌었을 정도. 아무튼 나를 지금 당장이라도 사림관에 툭 던져만 준다면 잉글리시 라운지 입구 안내 데스크에서부터 온니영어 정말 자신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국립창원대에서의 우당탕탕 경험이 든든한 초석으로 잘 깔아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음을 또한 고백한다.
제목을 적어놓고 보니 난 승자가 아닌 패자였을 거란 결론에 마음은 그리 썩 편하지만은 않다. 지잡대라고 무조건 까는 사람들은 이글보고 또 열심히 까겠지.
ps: 올해 통합 출범하면서 이 로고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미 정식명칭도 앞에 '국립'이 붙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