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레이디 두아>

나를 삭제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무결한 가짜

by 이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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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log <레이디 두아>

26.02.20 Netflix 시리즈 / 8부작

(1) 명품으로 시선을 끌고, 계급을 이야기하다.

런칭 전 예고편에서 캐치한 ‘가짜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여자의 사기극’이라는 설정에서 연상된 작품은 <셀레브리티>와 <안나>였다. 사회 현상이 되어버린 명품관 오픈런과 명품에 대한 애끓는 욕망에 대한 소재, 그리고 <화차>부터 흡입력 있는 여성 서사의 한 종류가 된 ‘정체를 속이는 여성’. 이 두 가지가 작품의 후킹 포인트였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내게 조금 더 와닿고 오래 남은 이유는 다른 작품과 달리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막대한 부를 가진 계급과 아예 꿈도 꿀 수 없는 계급의 일상이 나란히 전시되는 비극 속에 살고 있다. 결코 동등할 수 없는 넘사벽의 그사세임에도 ‘나도 그곳에 갈 수 있지 않을까’ 꿈꾸며, 그들이 향유하는 명품이라는 상징이라도 소유하고 싶어 한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는데 가짜라고 볼 수 있나요?”

작품을 보는 내내 무명녀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했다. 계급 전복의 사다리마저 사라진 현 시대, 도저히 도달할 수 없어 터져 나오는 피 맺힌 절규. 그 대단하다는 세계도, 그곳의 인간들도 사실 별것이 없는데, 나는 왜 도달하지 못하는가. 그리하여 무명녀는 죽기를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선택한다. 간절히 두 다리를 원했던 인어공주처럼, 그녀는 홍성신과의 거래를 통해 부유함이란 상태가 아닌 ‘감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토록 원했던 세계에 도달해 가짜로 진짜를 만들어낸다.

형사 박무경이 진실을 밝혀내기보다는 무명녀가 만들어낸 거짓을 받아들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은 개고생을 불사하고, 위기와 딜레마를 겪고 결국 거짓을 선택하면서까지 아득바득 본청에 남아야만 출세의 끈을 잡을 수 있지만, 국회의원 아버지를 둔 부하는 어디든 선택할 수 있는 계급에 있기에 단지 ‘재미’로 지구대를 자원한다.

한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능력과 정직한 노력만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곳이 있다는 이 시대의 현실. 이 작품은 그 지독한 계급의 벽을 보여주는 한편 질문을 던진다. 아무도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는데 사기를 쳐서라도 다른 계급으로 올라서고 싶은 욕망을 과연 나쁘다고 볼 수 있는가? 당신이라면 과연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어떤 것을 선택하든 그럼 그 선택의 가치는 무엇인가?

(2) 구조: 인물의 욕망을 조망하는 시선

청담동 하수도에서 신원 미상의 시체가 발견되며 시작되는 구조는 오손 웰즈의 영화 <시민 케인>을 떠올리게 한다. 인물의 다면적인 모습을 관찰자(형사 박무경)를 통해 보게 하는 이 구조는 관객을 액자 밖에 위치시킨다. 덕분에 관객은 내 이야기처럼 몰입하기보다, 이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현상’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경찰에 이어 ‘사라킴’을 아는 이들이 각 회차의 화자가 되어 진술을 펼치므로 굳이 장면을 해석할 필요가 없고, 사기극의 전말을 향한 미스터리가 강력하게 극을 추동한다. 40~50분대의 짧은 러닝타임, 그리고 배우로서 다채롭고 깊은 연기의 결을 보여준 신혜선의 매력역시도 속도감있게 작품을 다음 회로 이어가게 한다.

(3) 나를 삭제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불멸의 가짜

사라킴과 부두아의 시작에 있는 ‘정여진’과 끝에 있는 ‘김미정’은 사라킴이라는 인물에게 중요한 변곡점을 만든다. 상류층에 입성했으나 졸부라는 이유로 멸시당하는 정여진에게 사라킴은 결핍을 채워주는 이상향이었다. 그래서 정여진은 도리어 가짜에 불과했던 사라킴과 부두아에게 진짜라는 실체를 부여해준다. 그렇기에 사라킴과 정여진은 서로 침을 뱉을지언정 각별하다. 사라킴이 정여진의 녹스에 부두아를 상속하는 이유도, 정여진이 피해 본 일이 없다며 그녀를 ‘아름다운 가짜’라 부른 이유도 여기 있다. 지독한 가짜일지라도, 사라는 정여진에게 한여름의 눈을 만들어준 존재이기에.

반면 김미정은 사라킴이 결코 마주쳐서는 안 될 과거다. 지워버린 본질을 비추는 거울이자, 자신 역시 언제든 대체될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수 없는데 가짜라고 할 수 있냐”는 자신의 논리를 김미정에게 돌려받으며, 사라는 자신이 쌓아 올린 것들이 얼마나 취약한지 깨닫는다. 괴물 같은 쌍둥이를 마주한 순간, 그녀는 지독한 존재론적 딜레마에 빠진다.

형사의 추론과 달리, 사라킴은 김미정을 쓰러뜨리고 주저한다. 사람을 부르러 내려온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자신을 찾아온 홍성신과 스크린에 별처럼 떠오른 부두아의 로고였다. 취약한 인간인 ‘진짜 자신’을 삭제하고, 이미지일 뿐인 ‘부두아’를 영원히 남기기로 결심하는 찰나다. 원본 없는 복제물, 부두아는 그렇게 시뮬라크르가 된다.

나를 지우고 존재하는 나의 창작물이 의미가 있는가? 과연 이렇게 할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오랫동안 머뭇거렸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 내가 타고난 환경과 이미 힘차게 돌기 시작한 세상의 톱니바퀴를 돌릴 수는 없다. 무산계급 출신인 나는 세상이 물결칠 때마다 출렁이며 변두리로 밀려나고,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침잠하게 된다. 유일한 자산인 몸 하나로 아득바득 살아내며 잘못된 결과조차 온전히 스스로 탓해야 하는 삶. 그런 자기 연민과 혐오에 질식하느니, 나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만 빚어낸 무결한 자식이 영원하기를 바랄 것이다.

부유함은 감정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한때 목가희, 김은재, 사라킴으로 불렸던 본명 조차 알 수 없는 무명녀가 바란 단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녀가 만든 사라킴과 부두아는 진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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