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햄넷>

자연의 엄혹한 아름다움 속에서 예술로 승화된 오롯한 애도

by 이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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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log 영화 <햄넷>

26.3.7


(1) 자연에서는 삶과 죽음이 하나

푸르른 숲속에서 웅크리고 눈을 감고 있는 빨간 드레스의 아녜스는 생명 그 자체다. 매는 그녀의 친구이며, 숲속에서 자유로운 그녀는 님프의 현신으로 보인다. 그녀에게 구애할 때 윌리엄이 이야기한 오르페우스의 아내 에우리디케처럼. 샤먼이었던 어머니의 배움을 통해 아녜스는 어머니의 유산, 신비로운 자연의 섭리를 믿는다.


아녜스는 자신이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는 잠들곤 했던 나무 아래에서 첫 아이를 출산하고, 벅찬 심정으로 아이를 품에 안은 윌리엄은 나무 둥치 안의 검은 구멍을 응시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숲속, 이토록 축복스러운 탄생의 현장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불가해한 검은 구멍은 몹시 불길하다. 마치 빛과 어둠이 양면이라는 것을, 기쁨과 절망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탄생과 죽음이 한 몸이라는 것을 말하는 표상처럼 보인다.


아녜스는 종종 어머니가 남겨준 말을 읊조린다. "Keep your heart open.”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 햄넷이 떠났을 때는 떠올리지 못한다. 어머니가 죽은 후 교회에서 기도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그녀는 평생을 믿고 따른 자연의 섭리의 엄혹함에 몸서리친다.


(2) 햄넷, 용감한 소년의 자리 바꾸기

쌍둥이 남매인 햄넷과 주디스는 평소에도 옷을 바꿔입고 이름을 바꾸는 놀이를 즐긴다. 주디스가 병으로 죽어갈 때 햄넷은 주디스와 침상의 자리를 바꾸어 죽음을 속이기로 결심한다. 소년은 자신의 삶을 누이에게 주고, 아버지에게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세상을 떠난 햄넷은 검은 베일로 드리워진 어느 공간에 홀로 머물러 있다. 붉은 겨우살이 열매 옆에서 눈물 짓는 소년은 더 이상 만나지 못하는 가족들을 그리워 하는 것일까, 떠나지도 못하고 머물지도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 하는 것일까. 용감한 소년, 햄넷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떠올리게도 했다.


(3) 각자의 애도의 방식

자신이 햄넷을 낳았고, 자신이 그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당신은 여기에 없었으니 내 슬픔을 모른다. 아녜스는 윌리엄을 탓하고 자신의 신앙에는 죽은 햄넷이 어디로 갔는지 답을 알 수 없다는 것에 괴로워 한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에 공감을 바랄 수도 없고, 그 슬픔을 아는 사람도 자신 뿐이라는 지독히 외로운 고통 속에 갇힌다.


반면 윌리엄은 주디스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듣고 달려왔기에 아들의 죽음을 갑작스럽게 마주한다. 런던에 있는 그의 곁에는 자연도, 가족도 없다. 오로지 해야 하는 일만 그의 곁에 있을 뿐이다. 어두운 밤의 강변에서 금방이라도 물에 빠져서 죽을 것처럼 실의에 빠져있는 윌리엄이 읊조린다. “to be or not to be” 그 유명한 햄릿의 대사다. 이어지는 대사는 죽음은 안식이지만, 삶은 끊임없는 모욕이고 채찍질을 당하는 것.


윌리엄 역시도 햄릿처럼 죽음보단 차라리 현실에서 투쟁하기를 택하는 것 같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비극을 통해 아이를 되살려 내고, 자신이 아이 대신에 죽기를 택한다. 햄넷이 주디스와 자리를 바꾸었듯, 윌리엄은 햄릿 왕자의 죽은 아버지가 되어 무대에 오른다.


(4) 죽은 자와 산 자를 잇는 무대

햄넷의 이름을 쓰며 윌리엄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던 아녜스는 점점 자신의 아이 이름을 한 금발 머리의 왕자를 바라보며 점점 극에 몰입해 간다. 독을 먹고 쓰러져 죽어가는 햄릿을 향해 아녜스가 손을 뻗었을 때, 그녀는 주위 관객들 역시 자신과 똑같이 손을 뻗으며 눈물 흘리는 것을 목도한다. 아무와도 나눌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개인의 고통이 연극이라는 예술을 매개로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연극을 통해 내 아이의 이름은 계속 불릴 것이며, 그의 죽음 또한 끊임없이 애도될 것이다.


햄넷이 죽은 후 머무른 검은 베일로 가려진 의문의 공간은 연극 <햄릿>의 무대 위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종교가 연상되는 사후세계가 아니라 연극 무대 위에 죽은 햄넷이 머물고 있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만약 예술이 종교라면 그 종교에서 죽은 이들이 머물 법한 공간처럼 다가온다고 해야할까. 죽은 자와 산 자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아녜스는 마침내 무대 위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은 햄넷을 발견한다. 마침내 햄넷은 자신을 바라보는 아녜스를 향해 웃으며 모두의 소원을 품고 떠난 매처럼 자유롭게 죽음의 세상으로 떠난다. 숲속의 검은 구멍을 닮은, 무대 위 검은 문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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