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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폴스 Jan 14. 2020

10일 만에 돌아온 보테가 베네타

지갑 분실사건과 지갑의 가치


1. 작년 보테가 베네타 지갑을 샀다. 돈을 쓸 때 삼성 페이를 사용하고 체크카드로 현금 인출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사실 나에게 지갑은 그렇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고급 진 보테가 지갑을 사고 싶었다. 결혼 전 스스로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구매했다. 

 사기 전까지 기대를 했지만 보테가 지갑이 주는 기쁨은 며칠 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계나 핸드폰은 매일 들고 다니며 사용 빈도가 높지만, 지갑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갑은 내 책상 위 어딘가, 입었던 외투 주머니 속, 차 수납함에 놓이기 일쑤였다. 처음 사면서 아내가 축하한다며 넣어준 5만 원짜리 지폐도 그대로 꽂혀있는 채 말이다. 


2. 방학식을 하고 집에 왔는데 지갑이 없는 걸 알게 되었다. 어딘가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덤벙대는 나의 성격도 한몫을 했지만, 지갑이 놓인 곳이 뻔하기에 어딘가 있을 거라고 안일하게 여겼다. 주민등록증이 필요해서 지갑을 찾았는데, 아마 주민등록증이 필요하지 않았더라면 방학이 끝나고서야 지갑이 사라진 걸 알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제야 나는 지갑을 찾기 시작했다. 외투 주머니를 뒤졌고, 책상 위와 아래 수납함까지 뒤졌다. 내가 입는 바지 주머니도 살폈으며 교실도 다녀왔다. 자동차 시트 아래 바닥까지 2번이나 찾아봤지만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지갑을 잃어버렸다. 마지막 지갑에 현금이 얼마 들어있는지도 모른 채 나는 지갑을 잃어버렸다.


3. 40만 원이나 주고 산 지갑을 별로 사용하지도 않고 잃어버렸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쉬움보다도 의심이었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게 대부분인 내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의심하기 싫어서 학교가 아닌 곳에서 잃어버렸길 기도했다. 아이들을 의심하기 싫었으니까.

 그리고 다음에는 반성을 했다. 내가 관리를 못한 거니까 내 잘못이었다. 어쩌면 나는 이 지갑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었는지 모른다. 지갑을 샀지만 어딘가에 처박혀있었으니까 말이다. 앞으론 지갑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결론을 내렸다. 


4. 일주일이 지난 오늘 저녁 모임이 있어서 준비를 했다. 날이 춥다길래 두툼한 후드를 입기로 했다. 정말 편할 때 입는 옷이었다. 후드를 꺼냈는데, 앞주머니에서 '툭'하는 소리와 함께 지갑이 떨어졌다. 당황스러웠다.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물건을 그토록 찾았는데, 이렇게 우연히 찾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쁘지 않았다. 비싼 돈 주고 산 지갑을 다시 찾았음에도 - 그 안에 들었던 주민등록증과 카드를 재발급하지 않아도 됐음에도 - 넣어놨던 돈이 그대로 있는 걸 확인했음에도 - 말이다. 


 결국 이 지갑은 내게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카드를 긁었을 때 찰나의 행복이 끝이였다. 의미가 크지 않았기에 잃어버려도 쿨-하게 넘겼던 것이다. 반대로 내가 썼던 글들이나 내가 다녀온 여행 사진들이 사라진다면 꽤 오래 우울했을 것이다. 가치가 있으니까.


 물건을 살 때 정말 이 물건이 필요한지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보이지 않는 브랜드보다는 실용성을 더 생각해야겠다. 잃어버려도 금방 괜찮아질 것 같은 물건은 사지 말아야 겠다. 앞으로 나는 이 지갑을 매일 들고 다닐 계획이다. 핸드폰으로 '찍'하고 쉽게 결제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하지만 손수 지갑에 있는 카드를 꺼내야겠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이 물건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지 - 가치 있는 물건이 될 수 있는지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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