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스페인에 집이 생겼다

스페인에서 만난 아름다운 영혼들

by 안소담



스페인에서의 첫 알렉산더 테크닉 레슨날.

선생님의 이름은 Nica Gimeno.
바르셀로나의 첫 알렉산더테크닉 티쳐이자
알렉산더 테크닉 아카데미를 운영중이시며
20여년의 경력을 지니신 나의 네번째 매직핸드.

고운 흰머리의 그녀는
강렬한 스페인 여성의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내 Flo 라는 영어 이름이 왠지 남자인듯하여
남자의 얼굴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인터폰 목소리가 여자라서 깜짝놀라셨단다.

들어가자마자 신발을 벗고 만난
안방 두개 반 정도 크기의 클래스룸.
저물어가는 오후 6시 햇살이 드는 밝은 방.
벽마다 작은 사진이나 문구가 붙어있고
좋은 냄새가 났다.
작지만 넓고 공간이 부드럽고 여유롭다.
알렉산더 테크닉 자체도 그러하지만
무언가 다른세계에 와있는듯 하다.
평화롭고 안정감이 찾아드는 소박한 분위기.
한시간여 기차타고 오는길 내내
유독 더 굳어져있던 몸이
이유없이 사르르 풀어지는것만 같았다.

.클래스룸 한켠. 전신거울 두개, 스툴, 편한의자들, 바닥에는 누울수있는 얇은 카펫이 깔려있다




유난히 조용한 레슨이 이어졌다.
니카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Do nothing."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내 몸이 닿은 바닥을 느끼고
바닥이 나를 지지하는 것에 몸을 맡기고
온전히 내려놓으라 했다.

가끔 짧은 대화가 오고갔고
우리가 잘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나는
환하게 껄껄거리는 그녀의 웃음소리를 듣고 마음을 푹 놓았다.

선생님들의 손은 모두 다르다.
하리클리아의 손은 delicate 그 자체였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다.
경력이 깊을수록
그 손은 몸의 가장 안쪽까지 들어와
가장 깊은 곳을 release 하도록 이끈다.

semi-supine을 할수있는 테이블. 그리고 누워있는동안 보게되는 평화로운 오리떼



의자에 앉아 니카의 핸즈온을 받는데
손이 사뿐히 놓인곳마다
마법같이 몸이 사르르 풀리다가 손이 사라지면 다시 딴딴해진다.
나의 고질병인 의자에 앉아있으나
몸의 어딘가를 공중에 들고 있는듯
등과 어깨의 근육이 꽉 조여지는 증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니카가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It is okay to be here."

"You dont have to try hard.
Just sit here on the chair, with the light and the wind."

여기에 있어도 괜찮아.
어쩌려고 노력하지마.
라는 말에 섬칫 놀랐다.
앉아있으나 늘 무언가 긴장한 상태로
진짜로 그냥 여기 이순간
편히 앉아 "있는 것"이 이유없이 잘 안되는
나의 몸에게 필요했던 한마디.

큰 창문에서 정말 솜사탕 같은 바람이 솨아 하고 들어왔다.
마치 무슨 영화에 나오는 순간처럼
아름다운 빛과 풍경과 바람에 머리카락이 뒤로 날리는데

나도 니카도 절로 눈을 감고 아- 하며 웃었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마지막에 니카가 한말은
나에게 용기를 주는 보너스.
" You have very sensitive senses.
It is waste of what you have if you work with computer.
You should work with another human being."


-

몬세네 집에서 한달간 살기로 했던 것을

몬세네 가족 사정으로 13일로 단축했고,

우린 알바라는 멋진 녀석의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 이후에는 마드리드 친구집에 놀러가기로 했고,

마드리드를 다녀온 후 다음 도시로 가기전

바르셀로나에서 4일을 더 묵게 되었다.

그 집의 주인이 바로 마리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버스.

갑자기 다음 숙소의 주인장인 마리한테 메시지가 왔다.
"how are you"

엥?
이유없는 안부는 없다..라고 믿는
때낀 서른하나의 나.

집에 불나지 않는이상
자기는 예약취소 안하겠다고 서툴고 이상한 영어로 농담을 쳐서

날 한참 웃게하던 그녀.

왜 연락했지.. 하고 괜히 등골이 서늘했다.

안녕 마리야.
"너 집에 불난거라고만 말하지마...."
라고 답장을 했더니

"하하하하 아니 우리집은 아직 살아있어."
라며 또 재미난 영어구사.

그냥 심심했나보다 우리 마리.
덕분에 마드리드 가있는동안
짐 좀 맡아줄수있냐고 부탁했다.
폭탄없으면 받아준대서 내가 사진찍어서 보내준다고함..ㅋ
벌써부터 기대되는 마리네집...♡


-

기찻길옆 오막살이! 노래를 절로 부르게 되는, 알바네 집




그리고 오늘저녁.
우리의 호스트 알바와 급저녁을 함께했다.

그녀는 22살의 젊은 연극디렉터!!
어린아이들, 중학생들에게 자유연극을 가르친다고 한다.
수줍게 자기는 영디렉터라며..
지금은 막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멋진 디렉터가 될거야!
근데 오늘은 아니었어ㅠㅠ 애들너무힘들어ㅜㅠ 라며
엉엉 껄껄 웃던 귀여운 알바.


이 아이는 늘 힘이 넘치고 늘 몸의 동작이 화려하다.
왜인지 강렬하고 뚜렷했던 그녀의 우렁찬 목소리와 힘찬 몸짓들엔
이유가 있었던 것.

그녀에게 스페인어를 배우고
한국어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알바는 오늘 안녕을 배우더니
외우기 위해 컴퓨터 패스워드 안녕으로 바꿀꺼라해서
너 그거 패스워드로 해놓으면 맨날 컴퓨터할때마다 나한테 전화해야 된다고 하며 깔깔 거렸다.
별것도 아닌거가지고 정말 오랫만에 여자고딩들마냥
한참을 웃었다.

-


알바 때문에 여행중 최고의 샷을 남겼다. 연사 찍다 갑자기 간지럼 공격으로 치고 들어온 귀여운 알바자식.


우리가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알바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부모님이 안계신 불량청소년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연극을 가르치며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열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2년 동안 다녔다고 했다.

돈도 열심히 벌었고 그래서 이집도 살 수있었다고.

그리고 그 중에 한명과는 아직까지도 매일 연락을 하고 있다고.

특유의 해맑은 웃음을 활짝 지으며 알바가 말했다.

" If you change one person,

You change the world."



헤어지기 전날.

우리는 깔깔거리며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작은 공책을 들고 왔다.

그녀는 2주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자기 어머니에게, 그리고 엄마가 자기에게 준 공책이라고.

할머니가 직접 만드신 공책인데

엄마가 주시면서, 행복한 기억들을 기록하라고 하셨다고.

2주째 아무것도 기록하지 못했는데

이제 드디어 첫장에 쓸것이 생겼다고 첫장을 펼쳤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배운 한국말들을 삐뚤빼뚤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안녕, 나, 너, 사랑해.

그리고 자신의 이름.

열심히 두페이지를 채운 그녀는 날보고 씩웃는다.

공책을 열게 해주어 고맙다고.


"스페인에 이집은 너네 집이야! 언제든지 와. 이제 넌 스페인에 집이 생겼어!!!!"

하며 대차게 웃어주는 알바.

그렇게 그날밤 난 스페인에 집이 생겼다.

이 집이 자주 그리울 것 같다. 바닷가를 따라 난 기차길 옆, 세상을 바꾸는 능력을 가진 웃음 폭탄 그녀가 살고있는 곳.



아름다운 그녀, 알바 가르시아 산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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