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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Mar 01. 2019

몸의 감각들을 되살리며   

아일랜드 몸 마음 탐험기

잃어버렸던 몸의 감각들이 퍼즐 맞춰지듯 하나 둘씩 깜빡이며 제자리를 찾아온다. 다시 돌아왔다가도 또 사라지기도 하지만. 잠시 동안이라도 돌아와 주는 것에 만족한다.


생각치도 못했던 곳에서 깜짝 아이템을 줍듯이 힌트들이 나타난다. 아무 의미 없이 점처럼 찍혔던 일과 생각들이 하나둘 이어지며 분명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오늘은 스스로 내 위를 얼마나 괴롭히고 살았는지를 발견했다. 한국에서 잠시 방문하신 동료의 어머님이 힌트를 주셨다. 스치듯이 짚어주신 부위를 산삼캐듯 자꾸만 헤쳐 파보니 꽉 조이고 누르고 살았던 배의 감각이 느껴진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기만 한다면 돌아오기는 훨씬 쉬워진다. 모든게 얽히고 얽혀 대체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는 것이 문제였는데, 절대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실타래가 아주 조금씩 풀리고 있는 기분이다. 얼굴 보기 힘든 우리의 부 디렉터 글레나 쌤이 가르쳐 주신 골반의 움직임도 왠일인지 머리에서 맴돌다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쏙 들어와 주었다. 의자에 앉을 때 조차 골반에 꽉 붙들고 있던 것들을 아래로 완전히 내려놓는다. 도대체 뭘 얼마나 들고 있었는지 한참을 아래로 아래로 밀듯이 내려놓아야 했다. 아래로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만 위로 올라가는 힘을 받을 수 있다. 부엌 테이블에 명상하듯 앉아서 어디도 붙들고 쥐지 않는 배와 골반의 공간들을 기쁘게 한참 느꼈다. 일어나 거실을 맴맴 돌며 걸어도 보고, 설거지도 해보고, 다시 앉아도 본다. 무언가에 쫓기듯 앞으로 밀려져 있던 어깨가 등으로 향한다. 배는 자꾸 괴롭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저항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원래의 곳으로 돌아가 잘 유지되면 좋으련만,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던 시간만큼, 비슷한 시간이 걸려 다시 나에게 돌아올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죄값을 치른다는 마음으로 기다려 주기로 한다. 예전 같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끝도 없이 될때까지 해보자라는 식으로 싸우지 않는다. 잠시의 평화에 만족한다. 나는 뭐 때문에 내 배를 그렇게 움켜쥐고 살았던 것인가. 왜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단다 배야. 그렇게 한마디 해주고 만다. 배가 정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 평화를 유지해도 괜찮다는 것을 느끼게 하려면, 결국에는 정말로 그렇게 살아주는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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