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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Mar 03. 2019

횡단보도를 건너며 자존감을 회복합니다.

아일랜드 몸 마음 탐험기

며칠 전 학교에 타고 간 자전거 뒷바퀴가 '또' 터졌다. 아오........ 이번이 한 6번째인가. 징그럽다. 유리만 골라서 밟는 신기한 능력을 지녔는가.. 오빠는 한 번을 안터트렸는데, 나는 빵빵 잘도 터진다. 자전거 수리를 위해 오늘 학교 다녀와서 가장 싼 택시로 유명한 pro cap 택시를 앱으로 불렀는데, 버튼을 누르고 나니 큰 차를 체크하고 불러야 하는 걸 놓쳐버렸다. 이미 택시는 오고 있대고.. 다급히 전화를 걸어서 안내원에게 주소지를 말하며 큰 차로 바꿔달라 부탁을 했지만. 이곳은 아일랜드... 택시 기사랑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만, 우선 가 봐서 어떻게 어떻게 하다보면 되겄지 껄껄껄 하는 분위기이다. 하....


일반 크기의 검정 벤츠 차가 왔다. 트렁크가 좀 넓긴 했지만, 여전히 자전거가 제대로 들어갈 턱이 있나.ㅋㅋ 넣긴 넣었는데 1/3도 아닌 자전거의 절반이 트렁크 밖으로 대롱대롱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아저씨가 너네 집에 끈 같은게 아무것도 없냐고 묻길래 급히 집으로 들어갔다. 한국이라면 자전거를 보고 그냥 곧바로 유턴하셨을 바쁜 택시이겠지만, 아저씨는 내가 털실을 찾고 가위를 찾고 나올 때까지 럴러러러러럴 모드로 기다리신다. 털실을 보시더니.. 아 그거 가지곤 안되겠는데.. 그냥 살살 가보지 뭐 껄껄껄껄껄! 이라신다. 확인 안하고 불러서 미안하다 했더니.. 방법을 잘 찾아보면 세상만사 안되는게 없소! 껄껄껄껄! 우리도 별 수 없이 덩달아 껄껄껄껄 함께 웃는다. 난 그래도 뭐라도 두르는게 좋을 것 같아서 털실로 자전거 바퀴와 트렁크 어딘가를 세네번 둘러 묶었다. 아저씨는 트렁크 문을 활짝 열고,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자전거를 싣고 출봘~을 외치신다. 처음 출발은 엄청 천천히 가시더니 금세 자전거 실은 것을 까맣게 잊으신 듯 달리기 시작한다. ㅋㅋㅋㅋ 아놔... 불안 불안 이런 불안이 없지만 이곳은 아일랜드.... 설사 자전거가 도로에 떨어진단들 어떻게든 무사할 것이라는 기분이 드는 것을 보면 나도 여기서 2년을 살긴 살았나 싶다. 결국 목적지까지 무사히 왔고 아저씨가 자전거를 내려주셨다. 그러게 어떻게든 되긴 된다. 껄껄이 아저씨에게 괜히 감사해서 2유로 거스름 돈을 그냥 팁으로 드렸다. 역시 싼 택시를 불러도, 결국엔 이런 식이다. ㅋㅋ


처음 가보는 자전거 수리점에 들어가서, 저기요 자전거가 '또' 펑크나서 왔슴다. 했더니, 여기도 아저씨가 사람좋게 씩 웃으시며 웰컴투 아일랜드!!! 이라신다. 아무래도 내가 문제인 것 같다고.. 6번째라고 했더니. 자... 깨진 유리들이 다 어디있을까??? 바로 자전거 도로에 있지~~ 하시며 신나게 웃으신다. 옆에 있던 아저씨는 하지만 기억해라 20번째는 꽁짜다..! 라시며 시크하게 지나가신다.

이것 저것 자전거 정보도 여쭤보고 돌아가려다 보니 손이 느무 더럽다. 혹시 손 씻을 데 없냐고 여쭸더니 아저씨는 손을 펴봐! 하신다. 자기의 까만 손을 내 손에 묻히시며 고것은 더러운 거이 아니여.. 하시더니 따라오라 하신다. 오일 제거 스프레이를 손에 발라주시고, 비벼!!!! 그 다음엔 알갱이 있는 물비누를 뿌려주시더니 브러시로 닦으라고 친절히 알려주신다. 깨끗해진 손을 털며 돌아가는데 굳이 물도 다 닦으라며 휴지까지 끊어 주신다.


가게를 나오는데 노을이 곱다. 그냥 기분이 좋다. 느린 속도가 당연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냥 기분이 좋다. 느려져서 많아진 빈 공간에는 친절한 잡담과, 시시껄렁하고도 따땃한 유머가 들어찬다. 집으로 한참을 걸어 돌아오는 길, 꽤 많은 모르는 이들과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한다. 로터리 횡단보도 마다, 우리가 횡단보도 앞에 서기도 전에 차들이 자꾸만 멈춰 선다. 괜시리 미안해서 손 인사를 하며 얼른 뛰어 걷는다. 예전에는 이것이 친절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들에게는 그저 아주 익숙하고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사람이 있으면 차는 무조건 서고, 완전히 다 건널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어떤 망설임도 조급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언제 다 건너나 결코 살금살금 다가오지 않는다. 아주 온전한 정지이다. 그 정차 시간이 내게는 너무나 길게 느껴질 정도로. 길거리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 인사를 한다. 마트에서 버스에서 아주 작은 실례에도 웃으며 사과를 한다. 이들에게는 이것이 마음을 더 내야하는 친절함이 아니다. 아주 당연히 이만큼의 여유 공간을 필수로 지키며 살아온 것일 뿐.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잃지 않은 빈 공간들을 자주, 많이 만난다. 그만큼 동시에 상실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한국 사회에서 잃은 '당연함'들이 눈 앞에 분명하게 펼쳐지니까.


바다가 보며 걷다보면 로터리 횡단보도가 등장한다


당연하게 서로를 존중하고 살아온 문화 속에서, 엉뚱하게도 내 자존감이 조금씩 회복되는 것을 느낀다. 신호등이 없는 로터리 횡단보도에서 언제나 100프로 나를 보고 멈춰주는 차들에게서, 나를 온전한 사람으로 쳐준다는 암묵적 인정을 받는다. 초반 1년 동안은, 차들이 나를 보면 미리부터 무조건 멈추고 나만을 위해 기다려주는 시간이 너어무 부담스러워서 왠만하면 횡단보도에서 건너지 않고, 횡단보도에 도달하기 전 차가 안오는 틈새를 노려 무단횡단을 했다. 그 마음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가 참으로 황당무계했다. 뭐 횡단보도 하나를 못 건너냐 하며. 그리고 2년이 채워지는 지금, 이제는 횡단보도 건너는 일이 조금씩 익숙해 지고 있다. 저 차들이 다 이만큼의 시간씩이나 나만을 위해 기다려도 마땅한 한 인간임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확인받는 과정이 되었다.


우습게도 횡단보도 하나 건너기 힘들 정도로 쪼그라든 자아를 알아차린 어느 날에서야 모든 연결고리를 깨닫게 되었다.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어떻게든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존재로 살아왔던 그간의 인생이, 결국엔 자아를 넘어 내 몸까지 안으로 안으로 쪼그라들게 만들며 온 근육을 수축시키게 되었다는 것을. 그 몸 때문에 알렉산더 테크닉을 배우겠다고 아일랜드에 왔는데, 어쩌다 보니 아이리시 운전자들 덕에 내 존재의, 몸과 마음의 공간들을 회복하고 있다.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빈 공간에 시시껄렁한 웃음을 채우고, 별 것 없어 보이지만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채워넣는다. 쪼그라들어 잃어버린 존재의 부피를 넓힌다. 그저 딱 태어난 몸의 부피만큼, 마음의 부피 만큼 빈 공간을 가득 채워 당연한 존재가 되고 싶다. 횡단보도를 자신있게 건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졸업 목표가 된 나란 인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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