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소담 Apr 21. 2019

정원, 흙, 마법

아일랜드 몸 마음 탐험기 _ 자원봉사왕이 되어가며


올리브가 일하는 가든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흙을 만지고 밟는게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자연과 연결된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억세게 바보같은 고민을 오래도 했다. 바로 앞에 오가닉 가든이 있었고 신분이 똥꼬여서 일은 할 수 없으니 그냥 자원봉사라도 하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아주 쉽게 마법같은 정원이 뿅하고 열렸다. 첫 날에는 흙 바닥에 앉아 하루종일 잡초를 뽑았다. 비가 오면 아스팔트 위에 죽어있는 지렁이만 봤지 살아서 꿈틀대는 행복한 지렁이들을 그렇게 많이 만난건 처음이었다.


두 번째로 감자를 심으러 가는 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 정원의 예쁨이 자꾸 생각나 히죽히죽 웃음이 났다. 감자를 심는 일은 싹이 울쑥불쑥 돋은 감자 한 마리를 땅에 집어 넣는 일이었다. 한 명이 발로 삽을 땅에 깊게 밀어 넣으면, 다른 한 명이 삽을 빼는 사이 감자를 쏙 집어 넣었다. 깊이가 꽤나 깊어 감자를 떨어트리면 감자가 감쪽같이 어딘가로 사라졌다. 마치 지구 반대편 어딘가로 감자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고작 몇 시간 삽질을 하니 손바닥 살들이 굳은 살처럼 변하려고 했다. 내 살은 참으로 쉽고 고운 삶을 살았구나.


흙과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오랜만에 물을 꿀꺽 꿀꺽 많이도 마셨다. 거지 꼴로 자전거를 타고 집에 와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온 몸의 근육들이 살아있다고 욱신거렸다. 손에 잡히는 것들로 꽉찬 하루였다. 눈을 감고 바로 잠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횡단보도를 건너며 자존감을 회복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