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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Apr 22. 2019

알 수 없음의 기쁨

아일랜드 몸 마음 탐험기 

7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해가 좋다. 게을러도 해가 너그러운 늦봄이다. 오랜만에 늦은 산책을 나갔다.

 

독일의 아랑카 학교에서 배운 것을 떠올렸다. 무언가 충격적인 걸 깨달은 것도 같은데, 문제는 충격적이어서 그런지 잘 기억이 안난다.; 생각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애쓰지 않고, 다 알려 하지 말고, 컨트롤 하려 하지 말고, 어때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생각하는 법에 대하여. 


알려 해도, 컨트롤 하려 해도, 지금 이 순간에 가능한 것은 없다. 미래는 오지도 않았고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생각해 보면 이 순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사실 아무 것도 없다. 건강도, 시간도, 일도, 사랑도, 남의 평가도, 죽음도, 고통도, 지구도, 내 근육도 숨 쉬는 것 조차도. 아무리 애를 쓴단들 모든 것은 지 될 때로 될 것이다. 


월터 케링턴은 Thkinking aloud 에서 결국 삶의 디렉션은 동화 속 주인공들이 요정을 만나 소원을 비는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의심하지 않는 마음. 당연히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바라는 소원과 같은 것이라고. 그저 빈 마음에 바라고 믿을 뿐.


결국에는 알 수 없는 삶이 흐르게 두면 된다. 내 몸뚱아리 조차도 마찬가지다. 그냥 내가 나이게 두면 된다. 지금 이 순간에 딱 한 가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지금 현재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선택하는 자유의지 뿐. 


‘알 수 없음’이 막연하게 두렵고 무서웠던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알 수 없어서 닫고, 막고, 피하고 숨으며, 어찌 해보려 애썼던 삶. 그런데 알 수 없어야 더 많은 것에 열리게 될 거란 걸 자꾸만 배운다. 마음이 조금씩 방향을 바꾸어 간다. 


 알 수 없는 삶이 그저 흐르면서 현재의 나와 만나고 반응하는 지금을 살기를.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더 깊은 내가 피어나기를. 알 수 없는 기쁨과 알 수 없는 삶의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만나기를. 빈 마음에 바라고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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