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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담 Feb 26. 2019

산책 명상.

아일랜드 몸 마음 탐험기 _ 마음과 삶이 같은 방향을 향하길 

산책만큼 마음에 집중하게 되는 시간이 없다. 요새 매우 애정하는 시간이다. 애정하는 것과 실제로 하게 되는 것이 반드시 비례하진 않는다. 비례 그래프를 그리려 노력한다. 오늘도 해가 다 질 무렵에야 겨우 밖으로 몸을 내었다. 한 번 몸을 꺼내 놓기만 하면 그 다음은 무조건 좋다. 그런 것이 뭐라도 있다니 다행이다.



걸으며 믿는 대로 사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머리 속으로 생각만 하던 것을 조금씩 실제로 실험한다. 쓰레기를 줄이는 삶, 원치 않는 것은 하지 않는 삶. 작게라도 직접 만들어 입고, 만들어 먹고, 내키지 않는 것은 줄이는 생활을 늘려 나가고 있다. 그럴 수록 실질적인 내 일상의 순간들에서는 동시에 어떤 불일치들을 느낀다. 특히 돈벌이나 일, 사회적 성취와 관련된 것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건 아닌데, 막상 하려면 별로 하고 싶지가 않다.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부족한 것이라 믿었던 가정에 대해서도 별로 자신이 없어졌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 살고 싶은 삶이 무언가를 들여다 봐야한다. 답이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저 막연하게 매우 오랫동안 마음과 실재의 합이 맞지 않아 온 것을 느낀다. 더불어 쌓인 익숙한 답답함과, 어찌 빠져나갈지 방법을 모르는 막막한 마음들이 증거로 남아있을 뿐이다.



지난번 노래 워크샵을 다녀온 이후로 무언가가 명확해졌다. 자신을 울리는 무언가로 삶의 온 모서리들을 채우고 나누며 빛이 나게 사는 사람들을 눈으로 몸으로 목격하고 나니 덩달아 마음에 알 수 없는 불이 붙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무엇이든 살을 더 붙이는 일이 아닌, 그저 나로 자연으로 돌아가 지금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성장을 위해 혹은 살기 위해 늘 무언가를 찾았다. 계속해서 살을 붙이는 일들을 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고, 더 나아지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 어딘지도 모르는 어딘가에 가닿기까지 레벨을 끊임없이 올리며 내게 필요한 무언가를 찾고 배우고 깨닫고 싶었다. 모든 것을 멈추고 사회의 때를 뺀지 2년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안개가 걷힌다. 내가 걷고자 했던 고결한 성장의 여정이 결국엔 철저한 스펙과 성취 중심의 사회가 원하는 바와 별 다름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노래 워크샵을 진행하던 이에게 바보같은 질문을 했다. 물론 질문을 던지기 전에는 그 질문이 얼마나 바보같은지 몰랐다. 당신은 자연에 깊게 연결되어 보이는데, 어떻게 그렇게 된거냐고. 나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공간이나 프로그램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여자는 고요히 웃으며 대답했다. 중요한 건 아주 심플한 것들로 돌아가는 거야. 바다로, 산으로 가. 나무에게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불러봐. 끊임 없이 그저 노래를 부르는거야.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봐. 나는 싸대기를 세차게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방금 뭘 물어본거냐 싶었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자연에 연결되는 것 조차도, 어딘가에서 아주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그걸 제대로 배운 누군가에게 배우고 싶어하는 거였다. 배움과 성취라는 미명 하에 내가 놓치고 있는 수 많은 진짜의, 실재의 것들이 콸콸콸 홍수처럼 쏟아져 흐르는 것만 같았다. 기가 막혔다. 몸과 마음을 되찾기 위한 기술 말고, 그저 정말 내 몸과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자연에 연결되는 워크샵이 아닌, 그냥 자연에서 흙을 만지고 밟으며 살고 싶다. 살을 붙이기 위해 애쓰는 삶이 아니라, 태어난 뼈대를 가지고, 이미 있는 살을 가지고, 내 생긴 것을 맘껏 누리며 이 햇빛과 공기와 바다와 들판 속에서 노래나 부르고 뛰고 웃고 울며 살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게 그런 것이라면 그간 내가 느꼈던 오래된 괴리감이 설명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런 삶의 방법은 그녀의 말마따나 매우 단순하지만 동시에 매우 보기 드문 것이기 떄문이다.





인디언과 원주민들이 모두 멸종해가는 이 판국에서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할까. 나의 롤모델은 누구인가. 절이든 수도원이든 어디든에 들어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렇다면 오빠는 어찌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 밤 오빠에게 이런 나의 삶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묻기도 했다.ㅋㅋ) 어쩌면 생각보다 쉬울지도 모른다. 내가 해보지 않은 것들의 연속일 뿐. 막상 그 삶의 길은 당연하고 단순하고 가장 쉬운 길일지도 모른다. 땀 흘리며 손으로 몸으로 일하여 먹을 만큼의 농사를 짓고, 해와 바람이 잘 깃든 맛난 밥을 해 먹고, 부드럽고 가벼운 옷을 지어 입고, 매일 바다와 산길을 걷고, 노을과 해와 달을 구경하고, 그날 내가 가진 생의 에너지를 알알히 힘껏 쓰고 싶다. 그 날의 좋은 것들을 실컷 나누며 그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더 좋겠다. 내 생의 에너지를 소진시키거나 가둬두지 않되 그저 빛나게 방출하며 사는 방법들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돈과 삶의 사이도. 집과 땅은 어디서 구해야 하는가.ㅋㅋ 결국 이렇게도 저렇게도 다 살아보는 방법밖에는 없다.



스케이트 보드를 탈 때 커브를 돌려면, 온전히 몸의 무게를 새로운 방향으로 실어야 한다. 겁이 나서 조금이라도 붙잡으면 오히려 중심을 잃게 되어있다. 삶의 무게를 이곳으로 저곳으로 실어보고 싶다. 붙잡지 않고 온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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