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름, MBC에서 방영한 ‘커피프린스 1호점’을 오랜만에 다시 봤다. 다시 봐도 참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작품이이어서 드라마에 대한 리뷰를 쓰고 싶어졌다. 해당 드라마의 연출이나 스토리보다는 내 마음에 와닿았던 장면, 나의 감성을 자극하는 어떤 부분을 글로 표현하고 싶다.
5년 전 커프를 처음 보고 나서 일기장에 썼던 간단한 리뷰로는, 이 작품 안에 모든 인물들이 한 계절을 살아내고 있어서 좋다고 표현했다. 풀벌레 울음소리, 매미 소리, 자동차 지나다니는 소리, 카페 소리 … 모든 소리들이 음악이 되어 여름을 생생히 꾸며주는 게 좋다는 그런 이야기도 덧붙여서.
지금은 그때보다 더 좋아하는 부분들이 많아졌다. 최한성과 한유주의 이야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얼핏 그들의 감정을 알 것 같기도 하다. 10년의 세월을 가늠해 보기엔 20살의 나는 너무 어렸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그간 10년의 연애를 경험해 본 것도 아닌데 왜 그들을 이해하게 된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알아차린 지금의 나이에, 그들의 영원한 행복을 지켜보는 입장이 되고 싶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드라마든 똑같겠지만, 그래도 모든 인물들이 아픔을 딛고 결국 일어나 성장하는 해피 엔딩의 모습이 좋다.
커프의 메인, 한결과 은찬의 이야기도 빼먹을 수 없다. 주인공에게는 너무 가혹한 출생의 비밀이란 설정도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뻔하지 않아서 좋았다. 한결이 처한 주변 상황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최한결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나가고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는 전개된다. 커피프린스 1호점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드라마인 만큼, 유튜브 댓글에는 최근까지도 드라마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남자인 줄 알았던 은찬이 알고 보니 여자였다.'라는 사실을 알게 된 한결이 그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르겠단 의견도 많았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인물의 감정선에 파고들었을 때, 한결이 여자라고 밝힌 은찬에게 왜 그렇게 큰 배신감을 느꼈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자신의 상황이 힘들지만 옆에 애인이 있어 다행이라 말하던 한결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마저 저를 속여왔다는 사실에 많이 힘들어했다. 그런 일들이 겹쳐오니, 결국 제 주변의 거짓말들은 모두 자신이 불러온 참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그런 감정이 확 와닿았던 대사가 있다.
정말 싫다. 왜 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맞고 사냐.
내가 너 얼마나 사랑했는데… 나 못 믿구 지금까지…
고은찬, 있잖아 나는 나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해.
개망나니라고 해도, 천하의 쓸데없는 놈이라고 모두가 욕해도, 최한결은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최한결은 한다면 하는 놈이다, 최한결은 아직 하고 싶은 일을 못 만났을 뿐이다, 정말 한다면 하는 놈이다.
그렇게 나 믿어주는 사람.
너처럼… 사랑하는 순간에도 속이고, 버려질까 아닐까 재고, 따지고 그런 사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어도, 너만은 날 믿어주고 솔직하게 대해주는 게 좋았던 건데. 그런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순간. 한결에게는 그런 순간이 못 견디게 힘들었던 거였다.
한결은 자신의 감정이 앞서 욱하는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행동도, 주어 담을 수 없는 말도 내뱉었지만 그래도 결국 그런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 노력했다. 나였다면 절대 버티지 못했을 상황에도,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사과를 구하고 용서하며 모두 수습하고 책임지는, 그런 어른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이 드라마를 제일 많이 돌려보고, 또 볼 때마다 어떤 깨달음을 얻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는 내가 닮고 싶은, 멋있는 어른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인상 깊었던 다른 인물들의 장면도 소개해보려 한다.
부럽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하늘 보고, 별 보고 그렇게 이쁜 것들 보면 이쁜 것들처럼 헤벌레 해가지고….
그럼 사는 게 무지하게 이쁠 텐데
난 못 그러거든. 칭찬이야.
이번에 다시 보면서 새삼 좋다고 느껴진 장면이다. 한성이 왜 은찬이를 좋아했는지 말해주는 장면. 그리고 그런 감정과 느낌을 솔직하게 말하는 한성이 참 멋있게 느껴진다. 아니 우리도 좀 드라마 주인공처럼 멋깔 나는 대사 내뱉으며 살아보자구…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앉아도 되죠?
나도 오늘 은찬씨처럼 되게 억울했던 적 있었어요.
https://youtu.be/upbHqK5-wqY?si=qJ26IDbiaPkI6TFA
이 장면은 유주가 은찬이를 위로해 주는 장면인데, 친한 사이도 아니지만 혼자 울고 있는 은찬에게 다가가서 자신도 그럴 때가 있었다면서 유쾌하게 다독여주는 게 멋져 보였다. 그런 여유로운 어른의 모습이 보여서, 한유주라는 인물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장면이다.
아주 오래전에 내가 사랑한 여자는 그 여잔 정말 거짓말을 잘했어
나 떠날 때도 뭐라 그랬는지 알어? 유학 간다고.
그래서 마음은 아프지만 돈까지 해주면서 그래 좋다 가라. 기다린다 그랬는데
글쎄 1년 후에 딴 놈이랑 결혼한 거 있지
난 왜 그 여자만 생각하면 웃겨. 그 여잔 내가 참 좋았나 봐,
얼마나 내 눈치를 봤으면 얼마나 좋았으면 그렇게 오랫동안 거짓말을...
화가 나면 그 화를 단번에 녹여버리는 결정적인 방법을 알거든. 홍계식.
그래서 네가 화가 났어. 네가 그 여자 없이 정말 살 수 있냐.
그렇게 내가 나한테 물어봐. 그러면 화가 언제 났나 싶게 스르르...
https://youtu.be/IzapYaqyENo? si=yuxuh-UMW9 cBeYsz
힘들어하는 한결을 찾아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로해 주는 홍사장님... 주인공들보다 한참 어른의 나이여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지만, 홍사장님에게서는 진짜 성숙하고 너그러운 어른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 얘기하면서 웃음이 나오냐는 한결에게도 그저 허허 웃으면서 그땐 그랬지 하는 것도 씁쓸하지만 유쾌해 보였다. 결국 한결도 홍사장님의 조언을 받아 은찬에게 사과할 때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내가 고은찬 없이는 못 살 것 같다면서...
은찬아 우린 다 말하자.
그냥 모든 거 다. 사랑하는 거, 서운한 거, 보고 싶은 거, 화나는 거, 미운 거 뭐든. 몰라서,
이렇게 몰라서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하지 말고.
그래서 맘 아프게 죄짓게 하지 말고, 다 말하자
시련과 아픔을 겪고 이겨낸 주인공 커플을 보여주는 장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대사다. 앞으로 우리에게 힘든 일은 찾아오겠지만,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말자는 얘기일 거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 주고 그러면서 마음이 풀리고 상대에게 사과를 전할 줄 알게 되고. 그런 거. 내가 너 나이 때는 그랬어 ~ 하는 식의 위로나 조언이 꼰대같이 느껴지지 않고 그저 어른의 여유와 너그러움으로 비치는 것 또한 좋았다. 한유주가 상처받은 은찬을 위로할 때, 걱정할 때도. 최한성이 한결과 은찬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이해할 때. 홍사장 아저씨가 주인공들의 소용돌이를 그저 젊은 날의 청춘과 귀여움으로 바라보는 것도. 그래서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마음껏 아파하고 사랑해 봐라, 그것도 다 한때야.라는 것 같아서.
나는 메시지를 남기는 작품이 좋다. 분명한 메시지는 아닐지라도, 인생의 교훈이 되는 작품이 좋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인물들처럼 나도 언젠가는 먼저 위로를 건네고, 솔직하게 나의 마음을 전할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어른은 그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