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앙상했던 나무들은 초봄에 새잎을 틔우고 어느새 꽃을 피운다. 완연한 봄이 온 세상은 그 어느 계절보다 화사하다. 반가운 마음에 이름 모를 꽃들의 사진을 열심히 남겨본다. 단조로웠던 일상에 찾아온 새로움, 계절은 그렇게 돌고 돌며 작은 이벤트를 열어주기도 한다.
나는 봄꽃들 가운데 튤립을 가장 좋아한다. 다른 꽃들과 다르게 활짝 피었다기보단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한 모양새가 매력적이다. 튤립에는 다양한 색들이 있는데 각각 다른 꽃말을 지니고 있다. 그중 분홍 튤립의 꽃말은 ‘배려’ 또는 ‘사랑의 시작’이다. ‘배려’와 ‘사랑의 시작’, 두 가지 의미는 서로 이어져 있다. 타인을 위한 배려는 곧 사랑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형체가 없는 감정은 쉽게 정의 내리기 힘들다. 그 많은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사랑은 어떤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단순히 누군갈 좋아하는 마음이 사랑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애정이라는 이유로 날카로운 말을 던지고 순간을 쉽게 지나치기도 하니까. 모든 걸 움켜쥔 채 상대의 것마저 빼앗으려 드는 건 사랑이 아니다. 결국 나와는 전혀 다른 당신의 세계를 마주하고 이해하는 일, 나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정의 내린다. 그 사랑의 시작에는 분홍 튤립의 꽃말인 ‘배려’가 필요하다. 배려는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니까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하던, 내 기억 속 그는 분홍 튤립을 닮았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기억해 주며 모든 다정함의 이유가 곧 사랑이라고 말해주던 그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진솔한 감정은 조금 촌스러운 거라 생각했던 나는 그를 통해 타인을 배려하는 방식을 배웠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재고 따지는 건 불필요한 일이었다. 상대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저 온 마음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배려를 느꼈다. 그의 영향으로 나 역시 곁에 있는 사람을 더 생각하게 되었고,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언젠간 나도 그를 닮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어린 날이 떠오른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꽃집에 들러 사랑하는 이에게 전할 마음을 골라보고 싶다. 유독 꽃 선물은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어 버릴 꽃을 건네는 행위가 꼭 우리네 사랑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사랑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봄꽃처럼 화려할 거라는 의미 같달까.
봄날에는 분홍 튤립을 선물해 보면 어떨까?
꽃말에 담긴 의미와 함께 마음을 표현하면 좋겠다.
받는 이의 활짝 핀 웃음을 기대하며 사랑을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