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독서기간 : 2024. 03. 05 ~ 2024. 03. 06
*아포리즘 :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 *
0. 계기
유튜브인지 인스타인지 우연히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담긴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당시의 나는, 그리고 적어도 이 책을 주문하던 나는, 꽤나 인생에 대한 비관적인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철학자가 있음에 반가웠다.
1. 철학이란
조금 웃기지만, 초등학교 4학년, 11살의 나는 처음으로 '사람은 왜 살아가야 할까' '인생은 뭘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철학적 질문이 이거였던 것 같다ㅎ
철학은 내가 어려서부터 관심을 가진 분야 중 하나였다.
중학교 시절, 국어학원을 다니던 나는 우연히 철학경시대회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엄마는 "영어 시험이나 한번 더 보러가지그래~" 라고 하셨지만, 왠지 모르게 흥미를 가졌던 나는 그 대회에 나갔다. 생소한 대회였지만, 어쩌다보니 수상을 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입학 당시에 제출했던 나의 수상경력중 가장 희소성 있고 가치 있는 결과라 평가받은 적 있었다. 대학교 때는 졸업 후 다른 진로의 공부를 이어가고자 하는 나로서는 턱없이 부족한 학점 속에서, 내가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들은 과목이 '서양 철학의 역사'라는 과목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새로운 관점을 접하는 것이 흥미롭다.
사람을 만날 때도 나와 다른 생각과 관점,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비슷한 환경과 비슷한 직업,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보다 훨씬 흥미롭다.
ISFJ 인 내가 (과거엔 ESTJ 였기 때문에 언제 바뀔지 모르는 MBTI지만) 친한 친구들이 죄다 ENFP 인 것도, 같은 분야의 친구들의 대화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생각했을 때 철학이란, '인생이란 무엇인가' '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한 사람의 사유의 과정을 논리를 기반으로 펼쳐나가는 학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쓰여있다.
"철학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와 그 이유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그 전에 궁극적인 목표가 과연 무엇인지를 자신에게 묻고 답을 내리는 모든 행위가 철학이다"
'책'은 분야를 막론하고 '저자의 생각을 담은 집합체'라고 하나, 철학 분야는 조금 달랐다. 적어도 나에게 철학은 함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한 사람의 사유의 과정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학문이기에 흥미롭다.
(새삼 나는 straightforward한, 직관적이고, 있는 그대로의 것을 좋아하나보다)
2. 인상깊은 구절
(1) 우울
"우울함에 취해 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판단력이 흐려질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불감증이며, 이 단계에서는 사회적 인습 전반에 무기력해져 자기 생각과 감정만이 유일하게 옳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이 세상에서 나만 외롭고, 나만 힘들고, 나만 피곤하고, 나만 희생당한다는 망령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최근 우울감을 경험한 나의 머리를 띵하게 한 구절이다.
일년 반 정도의 기간동안 나는 우울했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의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어리석게도 혼자만의 동굴을 파고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시간만이 우울을 잘 극복하는 방법이고 우울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위의 구절에 따르면, 나는 점점 판단력이 흐려지고, 나의 생각과 감정만이 유일하게 옳다는 망상속에 스스로를 매몰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존중해주지 않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갑갑한 사람들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 부류 중 하나인데 말이다.
(2) 우정
"우정의 성격은 차분한 한결같음이다" "내 친구가 그곳에서 할 일이 있듯이 나 또한 이곳에서 할 일이 있다는 마음의 여유와 가치관이 우정의 진리이다"
쇼펜하우어가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를 친구에게 치유받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전반적으로 날카롭고 염세적인 태도를 취하는 쇼펜하우어의 우정에 대한 관점은 조금은 달라서 놀라웠다.
이 구절을 읽을 때 나의 친한 친구 A와 B가 떠올랐다.
A는 최근 매우 어려운 선택을 해야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나와 나누었는데, '어떤 선택을 하던, 어디에서 너가 뭘하던 항상 나는 너를 응원한다'라는 나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앞뒤 따지지 않고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온 건, 오래된 사이는 아니지만 진심으로 이 친구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B는 나와 물리적으로 가깝지 않은 곳에 있고, 자주 연락하지도 못하지만 정말 오랜기간 힘든 시기를 함께 겪어오며 의지해온 친구다. 내가 긴 시간동안 목표로 하던 시험에 합격한 날, 나를 위해 나보다 더 기뻐하고 울어주었던 유일한 친구이다. 오죽하면 내 전화를 받은 B가 너무 울어서 회사 사람들이 다 그 친구에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 후에도 우리는 각자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며 기쁠때나 슬플때나 항상 가장 먼저 나누고 싶은 친구로 서로를 응원하며 지내고 있다.
이 구절을 보내주자마자 "우리 이야기네" 라며 답장 준 B, 우린 새삼 차분하고 한결같은 우정을 나누고 있구나, 이런 친구가 있다니 참 감사하다.
(3) 태도
"우리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인생에 대한 극복과 인생에 대한 굴복이다. 숨 쉬는 모든 존재에게 길은 이 두가지뿐이다"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나간 후가 더 중요하다. 불행이 이미 지나갔는데 자기 징계를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오는 비극이 된다. 깨끗이 인정하고 징계를 받고 우연히 생긴 비극으로 인생의 페이지에 적어둔 뒤 책장을 덮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인생은 극복 인생에 대한 굴복‘ 라임 무슨일… 포기는 배추셀 때나 하는 말이다'라는 문구를 면학실 책상에 붙여놓았던 C라는 친구가 생각나는, 조금은 오글거리게 읽혔던 구절이다 ㅎ
인생의 많은 순간, 극복이 아닌 굴복을 선택하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던 걸까 돌아보게 되는 구절이었다. 뒤의 구절처럼 나는 불행이 찾아오면 그것이 지나간 후에도, 끊임없는 자기 징계 속에서 ’트라우마‘를 만들었다. 비슷한 상황이 찾아오면 불행하고 실패했던 그 때를 떠올리며 같은 상황이라 '왜곡'하여 인식했다. 잘못된 인식 속에서 나는 불행을 극복하지 못하는 굴레에 빠졌던 것 같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언젠가 또다시 나에게 좌절의 순간이 온다면, 그 때 이 구절이 떠올랐으면, 예전보다는 더 의연하게 그 시간을 극복했으면 한다.
3. 총평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라는 제목부터 팩폭이다.
스스로 비관론자라고 생각했던 나조차 책을 읽는 내내 뼈를 맞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다만, 인생은 고통의 소멸을 위한 과정이라고 말하면서도, 사유하며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 더 나은 삶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비관에 대한 비관'으로 설명한 그의 사유를 따라가보는 것이 흥미로운 책이다.
책을 읽으며 단순히 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저자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특히나 철학 분야의 책의 경우 저자를 이해하지 않고 읽으면 쇼펜하우어와 같은 염세주의 철학자의 글을 읽을 때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살펴본 뒤 사유의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도 독자가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읽을 분들은 쇼펜하우어와 부모님과의 관계, 그의 삶을 찾아보고 읽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