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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by 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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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간 : 2024. 06. 24 ~ 06. 27


0. 계기

위시리스트에 넣어둔 수많은 책들중 한권이었다. 가장 먼저 책의 제목이 흥미로웠고, 이 책을 추천하는 주변인들이 많았다. 한달 정도의 시간 동안 무기력하고 지쳤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했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책상 앞으로 몸을 이끌었을 때 책상위에 있는 수많은 선물 받은 책들중 가장 눈에 띄었다. 표지가. 그리고 제목이. (나의 눈을 사로잡은 책 표지를 첨부해두었다)



1.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 : 민들레 법칙

오만함을 멀리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 :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민들레 법칙이란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관점의 다양성을 포함한다. 이 책에서는 과학이라는 학문에서 하나의 잣대를 통해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행위가 획일화될 수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어류, 물고기였다.


비단 과학이나 분류학적 측면 뿐 아니라,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러하다.

나에게 호감을 주었던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이리만큼 멀리하고 싶은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삶의 경험의 축적에 의한 관점을 가지게 되므로 이를 비판할 수는 없지만, 이 때문에 가끔씩은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속상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오만함이라는 단어를 여러번 마주하며 계속해서 떠올랐던 S가 있다.
내가 목표를 이루는 순간마다 S는 어딘가에서 나타나 나를 깎아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아직도 눈에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건, 내가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을 때 S의 표정이다. 당황스럽고 샘나고 싫은데 축하는 해줘야할 것 같아서 불편해보이는 그 표정....
어쩌다보니 나는 지금 S와 같은 길을 걷게 되었는데, S는 본인보다 '늦게' 이 길을 걷게 되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깨닫게 해주고 싶어한다. 본인보다 먼저 그 길에 들어선 친구 J를 거의 숭배(혹은 칭송? 무엇이 S의 J에 대한 태도를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단어일지 고민이 된다)한다. 본인이 J에게 하듯, 나도 S에게 그렇게 대해주기를 바랬던 것 같다. 나에게는 지독하게 힘들었던 S의 태도가 J 입장에서는 좋을 수 있다. 항상 칭찬해주고 대단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하지만, 굳이 S를 뒤에서 욕하며 미워하는 것이, 미워한다는 마음 자체가 나 자신을 얼마나 또 다른 방식으로 힘들게 할지를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S를 멀리하기로 했다.


이 책에서, 자연을 나누는 하나의 관점이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모르는 '오만함'을 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쉬워보이는 일이,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모든 사람은, 그리고 나조차도 나에게 닥친 시련이 가장 힘들고 어렵게 느껴진다. 당연하다. 눈 앞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구급차에 실려가는 사람을 보면서도, 가지고 있던 종이에 베인 작은 상처가 나에게는 더 아프다. 누구든 타인의 고통이나 경험을 '감히' 판단할 수 없다. 힘들어하며 터놓는 친구가 있다면 그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공감할 수 있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경험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하다. 그저 터놓는 순간, 그 과정을 통해 친구가 짐을 조금이나마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본인만의 계급사회에서 사람을 나누고, '감히' 타인의 경험과 과정을 평가하려는 S와 같은 태도는 오만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S의 인생을 모두 알지 못하고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인지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관점에서는 오만할지도 모르겠다.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계급으로 나뉘어진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당연하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런 태도가 자리잡았을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인간은 원래 곧잘 틀리잖아."
언니는 평생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늘 반복적으로 오해해왔다고 말했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다만, 적어도 가끔은 '민들레 법칙'을 떠올리며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세상의 전부,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고 누구든 틀릴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해야한다. 혹시라도 너무 자주 이 사실을 놓친다면, 나도 모르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 인생이란 달리기, 그릿

"그라나다대학에서 수년간 수집가들을 연구한 프란시스카 로페스-토레시야스는 스트레스나 불안을 겪는 사람들이 수집에 의지해 고통을 달랜다며 비슷한 현상을 지적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된다."

이 책에서 데이비드는 분류라는 행위를 통해 무력감에서 벗어났다. 본인이 통제하기 힘든 인생에서 끊임없는 무력함을 느끼며, 강박적 수집과 분류를 통해 고통을 해소했다. 그에게는 삶의 동앗줄이 되었을 행위가 이 책의 마지막에서 오만함의 사다리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그의 '그릿'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릿 Grit,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노력과 흥미를 유지하는 것"
나는 어떤 일을 하던 이유를 찾는 버릇이 있다.
피곤하게도 그냥 받아들이는 법이 없다. 왜 해야하지? 무엇 때문에?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스스로가 설득되지 않으면 나사 빠진 로봇처럼 멍하니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때의 나와 그렇지 않은 나의 생산성은 심하게 차이가 난다. 종종 스스로가 명령어가 입력되지 않은 로봇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원동력과 이유'라는 명령이 입력되지 않으면 먹통이 된다.
반면, 내 주변에는 '그냥 한다' 라고 말하며 몇 년간 성실하게 본인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친구들이 참 많았다. 나는 무엇이 그들의 원동력이 되는지 궁금해서 매번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하는거야?'라고 물어봤는데,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냥 하는거야'라고 하더라.


이런 습관 때문에 나는 매번 조금은 늦게 목표를 이루어왔다. '일단 하고보자'라는 마인드를 갖기가 왜 이렇게 힘든건지 나조차도 내가 어렵다. 이것 저것 따져보고, 고민하고 생각하느라 인생의 달리기 중간에 난 참 자주 쉬어갔다. 내 주변에 쉬지 않고 달려가는 많은 친구들을 보며, 이 책의 데이비드를 보며 또 다시 끊임없이 달리는 힘이 부럽기도 했다.


새삼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말이 와닿는 순간이다.

중간중간 쉬어간 나의 인생도, 끊임없이 달려가는 사람들의 인생도 정답은 없다. 그저 어떤 길이던, 꾸준히만 하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 내가 그 말의 산증인이다. 조금 늦었지만 나는 내가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한 적이 아직까지는 한번도 없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너무 늦은 인생일지 모르지만, 상관없다. 내 인생의 속도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니까.


10대, 20대때는 쉬지 않고 달리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만 했다. 하지만 30대인 지금, 쉬지 않고 달렸던 많은 친구들 중 대부분의 '현타'의 순간을 맞닥뜨리더라. 아무 생각없이 달려왔지만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해왔는지 모르겠다며 펑펑 울던 친구도 여럿 있었다. '왜 좀 더 빨리 달리지 않는거야' '왜 자꾸 멈추는거야' 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순간들이 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쉼의 순간들을, 고민의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30대의 나는 좀 더 성숙하고 넓은 시야를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어하기에.


나와 같은 시간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을 조금은 멀리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루, 한달, 일년에 급급하지 않아도 된다. 인생은 생각보다 기니까.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면서 쉬어가는 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렇지 않아도 된다. 5년 후의 내가, 10년 후의 내가 소중하게 여길 시간들이 될테니. 상투적이지만 인생에 정답은 없고, 잠시 멈춰 서있더라도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고 다시 어디든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이 곧 내 길이 될 것이다.




3. 총평

'"I hope this book will show you something wild-that you mean a lot to this world"
-룰루 밀러-

이 책의 작가가 책의 첫 페이지에 메모로 남겨둔 글이다.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중요한 존재라는 것.

인생에 있어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면, 세상 사람들이 정해놓은 기준과 잣대로 평가받는 일이 너무나도 두렵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책 제목의 답이 어디쯤 나와있을지 궁금해하며 책을 읽어간다면 꽤나 순식간에 읽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물고기는 뭘까, 세상을 살아가는 나의 태도는 어때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읽는다면 무언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 수 있는 작은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해본 두가지 위와 같은 주제처럼, 나 자신에 대한 확신, 그러나 오만함이 되지 않기를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나 그리고 이 책을 접하는 많은 사람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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