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우정은 뭐랄까.
아니 나에게 우정이란 뭘까.
나이가 들수록 내가 생각하는 우정과는 다르다.
아닌 사람도 분명 있겠지.
나와는 다른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사람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갑자기 망해서 서울역에 박스를 덮고 생활해야 한다면, 그 때 나에게 손 내밀어줄 수 있는 ‘남’은 누구일까.
딱 한 명의 친구가 떠올랐다.
나의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상황과 무관하게 내 옆을 지켜줄,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사랑해줄 친구.
그렇다면 내가 연락하는 수많은 다른 친구들은 뭘까.
어쩌면 나의 직업, 인맥으로서의 가치가 나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좋은 이유가 될 수 있겠으리라.
결혼을 앞두고 예물을 은근슬쩍 자랑하는 친구
그 친구와 비교하며 조용히 속상해하는 친구
인스타에 수많은 행복한 사진을 올리며 ‘행복한 척’하는 친구 (어느날 갑자기 이 친구에게 힘들다고 연락이 와서 얘기하던 중 본인에게 직접 ‘행복한 척’중이라는 워딩을 들었다)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아지고, 결혼을 한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생활 반경이 달라져서 일까.
여자들의 우정이라는게 참 별거 아닌 보여주기식도 많았구나. 아니, 여자들의 우정이 아니라 ‘나의 우정’이 그랬나보다.
음, 그들의 주변에 본인의 남편보다 더 나은 조건의 남자가 있다면 선뜻 소개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이건 인간이 가지는 당연한 시기, 질투일 수 있으려나.
어쩌면 나도…
내가 생각하는 우정과 의리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도 모르겠다.
시기, 질투 없이 내가 속한 집단, 경제적 상황에 무관하고 나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해주는, 사랑해줄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있겠는가.
나도 내가 원하는 관계를 위해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관계가 되기를 원한적도, 그들에게 소홀했던 적도 없다. 매 순간 진심이었고 나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들에겐 아니었던 것일까.
문득 공허해지는 오늘.
이런 말이 있더라.
친구라는 인연은 같이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과 같다고.
어떤 인연은 목적지까지 함께 가기도 하고, 어떤 인연은 먼저 내리기도 한다.
관계에 대한 고민은 항상 ‘나와 잘 지내자’로 끝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어작용인지도 모르겠다.
혼자로도 괜찮은, 타인에게 영향받지 않은 사람이면 그걸로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