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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너무 슬픈 병

by 지안

할머니를 뵈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도 안하고, 찾아뵙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뵌 할머니는 예전과 달랐다.

“우리 강아지~ 올해 몇살이지? 공부하느라 힘들지”

하셨던 우리 할머니가 아니었다.


나보다 핸드폰 시간에, 티비화면에 나오는 미세먼지 농도에 관심이 있었다.

“지금 8시 50분이네. 저기봐바 미세먼지 좋음이네”

“맞아요 할머니 오늘 날씨 완전 좋아요!”

“지금 8시 53분이라고 써있지. 저기랑 똑같네. 미세먼지 좋음이네”

다소 공허한 눈으로 반복해서 몇번을 말씀하셨다.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으로 30년 넘게 일하셨던 할머니.

누구보다 엄하고 무서운 눈으로 손주들을 훈육하셨던 할머니.


예전의 할머니가 생각나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눈물을 꾹 참으며 복지관으로 향하는 차까지 할머니를 모시고 내려갔다. 복지사분께서 안전벨트를 채워주실 때, 할머니는 “우리 손녀야 손녀.” 하면서 웃으셨다.

차 문이 닫힐때 복지사분께 “우리 할머니 잘 부탁드립니다.” 했더니 닫힌 문뒤로 들린 말. “또 와~!”


그리고 떠나가는 할머니가 타신 차.

또 오라는 그 말이 왜이렇게 슬픈지.


항상 “우리 손녀 오랜만에 왔구나. 건강하게 열심히 공부해라” 하시던 할머니 말에는 눈물이 난 적이 없는데.

‘또 와’라는 두글자에 눈물이 펑펑 흘렀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에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고모에게 전화했다. 할머니를 뵈었노라고.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 고모는 매일매일 악화되는 할머니를 보면 더 마음이 아프다 하셨다.


다시 떠올리며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치매는 참 슬프고도 무서운 병이다.

할머니가 나를, 그리고 많은 것들을 잊어가시는 것 같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참 슬프면서도 무섭다.


할머니를 만나고 서울로 오는 길.

멈추지 않는 눈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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