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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프라이드

104. 아빠의 프라이드

사기를 당해서 아빠가 무너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집은 나름 잘 살았고, 따로 기사를 뒀던 아빠는 운전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아빠가 운전을 배운 건 1년도 채 안된 일이다.


08년식 흰색 아반떼HD. 누군가의 손때가 고이고이 묻은 나의 첫 차. 꼬붕이.

어른이 된 내가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에게도 가족 여행이라는 게 생겼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가 어딘가를 가족이 함께 여행 간다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시골 할머니 집에 갈 때에도 삼촌들의 차에 가족들이 나눠 탔으며 삼촌들이 오지 않는 경우에는 어마어마한 택시비를 지불하고 가야만 했다.

차 하나는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했고, 우리 가족을 이어줬다.


이런 일들을 경험해서일까.

아빠는 환갑의 나이에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하셨다.

난 아빠의 합격을 위해 주말마다 순천에 내려가 특별 강사가 됐다.

늘 건설 중장비도 잘 다루고, 오토바이를 잘 타서 운전은 껌일 거라고 하셨던 아빠인데,

허연 얼굴에 어깨는 잔뜩 올라간 경직된 자세를 하고선 제대로 헤매셨다.

공식을 알려줘도 주차는 수차례 실패했고, 장내 주행을 하는데도 핸들을 갑자기 팍 꺾거나 너무 느릿느릿 돌려서 건물과의 싸움을 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아, 아빠가 운전을 하는 게 잘한 일일까.

그럼에도 어린 시절 내게 자전거를 알려주셨던 아빠처럼, 나는 아빠를 가르쳤다.


"아빠 떨어졌다."


역시, 특훈도 소용없었을까.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크게 낙담하지는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이 재미없었는지,

합격 소식을 말하던 아빠.  


그런 아빠를 위해 아빠의 첫 차로 프라이드를 사드렸다.

07년식 회색 프라이드.

내가 돈이 많았다면 더 좋은 차를 해드렸을 텐데.

가난한 아들은 아빠에게 첫 연습용 차니까 이것도 괜찮을 거라 되뇌었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탄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엄청 흔한 일이지만

내겐 서른 살이 되어 처음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한 순간이었다.


선글라스는 또 언제 챙겨 오셨는지,

선글라스를 끼고 운전하는 게 아빠의 로망이셨나보다.

어떻게 지금까지 견디셨을까.


프라이드를 탄 아빠가

어렸을 때 보던 아빠처럼

다시 커 보였다.


아빠의 프라이드,

이젠 제가 지켜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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