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을 걸으며

친구와 무언의 약속

by 순수

"너는 상대방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

놀라운 친구야.

먼 길 와 줘서 고맙다.


담에 토스카나 와인과 함께하자"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성수동 SKview 건물을 뒤로하고

택시를 탈까 하다

걸었다.


걸으면서

친구의 카톡을 받고

답톡을 보내고.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바람이 분다.

가을바람 속에 겨울이 묻어온다.


아들 결혼식 때

항저우에서 3박4일 ceo연찬회가 있어

참석하지 못한다고 미안해하며

화환과 축의금을 보내준 게


나는 너무 고마워서

밥이라도 사주고 싶었다.

멀리 왔으니 자기가 사겠다는 걸

"여기까지 온 나의 목표를 방해하지 말라"고 하며

기어코 계산을 했다.


골드미스 내 친구.

어릴 적 고생하는 엄마를 보며

빨리 돈 많이 벌어

좋은 집을 사주겠다고 생각하고

정말 좋은 집을 사주고.

엄마를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멋진 친구.


언니, 오빠들은 아직도 경제적인 도움을 바라고 있단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쩔 수 없이

그래도 가족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몇억씩이나 오빠 언니들에게 주었다는 고백.


"근데 친구야

서러운 게 뭔지 아냐?

그렇게 해줬는데도 고마움은커녕

더 해달라는 식이다"

씁쓸하게 웃는 친구를 보며

얼굴을 마주하고

같이 씁쓸하게 웃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잊고 싶었던

지난날의 기억이 불현듯 떠 올랐다.


조그마한 사업을 하는 오빠가

급하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여

적금들을 해약하고 모아 모아 몇천이나 되는 돈을 내어줬다.

오빠는 형편이 나아지면 갚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은 결국 오랫동안 미뤄졌다.

더 이상 그 돈을 내 돈이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일로 남편과 말다툼을 하고ᆢ


친구의 속상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그랬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뭔가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한 마음..


친구는 마지막에

"이젠 가족들과도 좀 거리를 두고 지내고 싶다" 했다.

결혼하지 않은 막내의 돈은

마치 갚지 않아도 되는 돈처럼 생각하는 형제들.

엄마가 돌아가시면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을 것 같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생각했다.


각자의 가정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참 많은 서사가 있다는 것을.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밝고 예의 바르고 긍정적인 사람.

대체로 맞는 말이다.

아버지가 아주 어릴때 돌아가셨고

엄마는 함께 살지 못했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 삼촌과 고모들에

둘러 쌓여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으니.


어쩌면 부모님이 내게 남겨주신

가장 크고 값진 유산은

타고난 긍정적인 성향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처럼

친구의 씁쓸한 가족이야기를 들을 때면

잊고 싶던 작은 상처들이

나를 조용히 찾아온다.


그래서 걷고 싶었나보다.

가슴 한켠 먹먹한 마음을

차가운 바람 속에 떠나 보내고 싶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줄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선을 긋고

부드럽지만 날 선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상대방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

놀라운 친구'라는

친구의 카톡을 다시 한번 읽는다.


우리 둘은

가족이라도 계속 상처를 준다면

거리를 두고

나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무언의 약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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