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현철에게 전 아내 근희는 영원한 친구이자 연인이었다.
대학 때 만나 의사가 되기까지 힘든 시간을 그녀와 함께했다.
피부ㆍ성형외과를 개업하며 둘은 새로운 희망으로 들떠 있기도 했다.
함께한 세월이 15년이다.
언제까지나 힘이 되고 위안이 될 것 같았던 그녀가
단지 돈 때문에 이혼을 요구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고 현철은 버려졌다.
폐업은 했지만, 페이닥터로 다시 시작하자고 매달렸으나
차갑게 식어버린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현철은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들을 자신에게 설명해 보기 위해 애썼지만 알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불가해한 운명.
인생의 실체를 커튼 틈으로 보고 금방 커튼이 닫혀버렸다.
대한민국 최고 의대에 진학했지만 돈 많고 머리 좋은 동기들 틈에서
끊임없는 열등감을 느끼며
자기 자신과 싸우고,
절망과 싸우고,
촌놈이 공부하면 얼마나 하겠냐는 편견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냈다.
레지던트 1년 차 때 응급실에서 교통사고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며칠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
새벽 3시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새벽 6시.
응급실에서 호출이 왔다.
"선생님 빨리 와 주세요. 지금 6살 남자아이가 넘어진 후 의식이 없어 119로 오고 있답니다."
윤 간호사의 호출을 받고 겨우 일어나 가운을 손에 들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막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순간,
119가 응급실 앞에 도착했다.
현철은 응급실에서 간호사들이 밀고 나오는 이동 침대를 당기며 후송차 앞으로 가져갔다.
6살 남자아이가 자는 듯 누워있었고,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아이의 손을 잡고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119 직원들과 간호사들이 아이를 이동침대로 옮기는 순간,
아이의 손이 현철의 손을 잡았다.
이상한 전율이 일었다.
손은 아직 따듯했다.
급히 응급실 안으로 밀고 가는데 아이의 손이 옆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놀라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지만 아이는 이미 숨이 멎었다.
그때 그는 응급실을 떠났다.
그리고 무작정 병원을 떠났었다.
“어린 생명 하나 살리지 못한 게… 무슨 의사라고...”
그 죄의식이 그의 영혼을 무겁게 눌렀다.
그 후 그는 피와 생명을 멀리했다.
성형외과를 택한 것도, 어쩌면 도망이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었는데 그 아이가 손을 내밀어
자신의 손을 잡았던 그 감촉이 느껴져 가끔씩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곤 했다.
이혼, 폐업, 절망
그를 붙잡은 건, 노모의 눈물뿐이었다.
남편도 일찍 세상을 떠나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잘 키우겠다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눈물과 간절한 호소를 외면할 수가 없어
결혼 정보회사를 통해 지금의 아내 채영을 만났다.
지방 중소 도시의 부유한 건축가.
그녀는 결혼을 약속하면서
“ 명문대 출신이시니 성형외과 하면 잘 되실 거예요."
그 말은 희망처럼 들렸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쁨의 불꽃이
가슴에서 타올랐다.
하지만 결혼 후, 갈등은 곧 시작되었다.
채영과 어머니의 불화,
제삿날의 다툼,
이어지는 모멸.
현철은 어느 순간 자신이 증오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밤이면 그녀를 ‘죽이는 상상’을 했다.
자신이 두려워질 만큼.
그녀를 살해하기로 했다.
그가 선택한 건 수면제와 골격근 이완제였다.
전신마취제의 보조제로
'수술에 주로 사용되는 골격근 이완제를 과다 투약해
심장을 멈추게 한다면 완벽한 범죄가 된다.'
항상 마지막에 퇴근하는 김간호가 문을 닫고 나간
저녁 7시.
그는 약품을 사용하기 편한 형태로 조제했고,
봉투에 넣어 서류가방 속에 숨겨놓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 정말로 아내를 살해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
현철은 그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것 같았다.
아내로부터 받는 모멸감으로 더는 참기가 힘들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퇴근하며 다시 한번 완벽한 범죄를 꿈꿨다.
‘그녀의 심장만 멈추면 끝이다. 지옥도 끝이다’
라는 생각을 하자
두려움보다는 용기가 생겼다.
11월 15일 밤,
그녀에게 수면제를 탄 포도주를 줬다ㆍ
곧 깊은 잠.
그는 정맥 주사를 놓았다.
그리고 알리바이를 위해 집을 나섰다.
새벽,
채영은 심정지로 사망했다.
그는 눈물 흘리지 않았다.
눈빛만이 떨렸다.
“김현철 씨, 아내 지채영 씨 살해 혐의로 체포합니다.”
“내가 아니야! 난 안 죽였어!”
울부짖으며 눈을 떴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소파에 잠들어 있던 채영이 눈을 떴다.
그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꿈이었다.
모든 게 꿈이었다.
채영의 눈빛에도 아랑곳없이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얼굴을 감싸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안도의 한숨이 그를 감쌌다.
방으로 들어가는 채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현철은 생각했다.
이제 다 정리하고 떠나자.
미련 갖지 말자.
2018년 7월 13일 오후 2시
근희는 주말이면 현철과 책을 들고 찾곤 했던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멍하니 책을 들고
현철과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주말의 행복을 생각했다.
옆자리에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딸과 엄마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 노회찬 의원이 투신해서 죽었대”
“ 그 사람이 누군데?”
“ 정의당 의원 있잖아”
“ 몰라 ”
딸은 심드렁하게 말하며 문제집만 노려보고 있었다.
그 대화를 들은 그녀의 손이 떨렸다.
“투신.”
그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평소 그를 인간적으로 바라봤던 그녀는
단순한 정치인의 죽음이 아니라,
지금 자신처럼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한 인간의 ‘종말’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하늘은 짙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녀 마음속에서도
무언가 천천히, 무겁게 추락하고 있었다.
현철과 헤어지고 2년이 지났다.
그가 지방의 한 재력가와 재혼했다는 소식을
친구가 전해줬다.
불쑥불쑥 현철과 함께한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삶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중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새엄마에게 상처만 받았다.
공부에 몰입하며 혼자 사는 그날만을 그녀는 꿈꿨다.
의대 본과 3학년 때 현철을 도서관에서 처음 만났다.
그가 맡아 놓은 자리에 그녀가 공부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현철은 굵고 짙은 눈썹.
딱딱한 턱선 때문에 마치 엘리트 장교 같아 보였다.
언제나 신경이 날카로웠고
그의 영혼에는 굳은 살이 가득했다.
조심해야 하거나 조심스럽게 덮어 두어야 할
영혼의 상처로 가득해 보였지만
근희는 그의 굳은 살에서 자신을 보았다.
힘들게 공부하며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던 시간이었다.
같은 병원에서 인턴을 거치고, 레지던트를 거치며,
결혼하고 그 모든 여정을 그와 함께했다.
서울에서 피부성형외과를 개원했을 때까지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지는 듯했다.
개원 후 현철은 진료에만 매달렸고 섬세한 손재주로 성형수술 환자들을 매혹했다.
그녀가 서서히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이 문제였다.
더 나이가 들기 전 아이를 갖고 싶었던 그녀와 달리
현철은 병원이 안정된 후ㆍ
“현철 씨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기나 해?”
“알지. 조금만 참자.
내년까지만 좀 더 병원을 안정적으로 키운 후
우리도 페이닥터 한 명씩 채용해 놓고
같이 해외여행도 다니며 즐겁게 살자”
“집의 크기가 행복의 크기는 아니야.
병원이 커진다고 내 행복이 커지는 것도 아니야!”
그런 대화들로 자주 다투게 되던 그때,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갔다
근희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불임.
아이를 낳고 아이가 커가는 것을 함께 지켜보며
좋은 부모로 행복한 가정을 갖고 싶었던 그녀.
오로지 성형외과 의사로 성공해
부와 명예를 갖고 싶었던 그ㆍ
둘은 너무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그녀는 말리고 싶었다.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꼈고, 그의 등을 보며
잠드는 밤이 많아졌다.
현철은 괜찮다고, 아이가 없어도 너만 있으면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때부터 조금씩 우울증이 생기고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이 이어졌지만,
그녀 마음의 병은 깊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현철이 의사로서 양심을 저버리는 일을 했다는 것을 알았고,
이어져 오는 의료 사고.
20대 중반의 여성 환자.
매일 아침 가족들이 찾아와 진료를 방해하고
딸을 살려내라며 병원로비를 점거했다.
현철은 보호자들을 피해 당분간 진료가 없다는 것을 통보한 채 칩거에 들어갔다.
결국, 중재를 통해 거액의 돈을 보호자에게
보상해 줬으나
옥죄어 오는 죄책감...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근희는
현철에게 염증을 느꼈다.
언제부턴가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그를 보며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
그렇게 그녀는 현철과 헤어졌다.
그는 그녀가 돈 때문에 헤어진 것으로 생각했지만
탐욕에 물든 그를 버린 것이다.
병원은 문을 닫고
현철과 헤어지고 그녀는 한국을 떠났다.
정처 없이 떠다니며 생각 없이 살았다.
헤어질 때 현철은 의료 사고로 보상해 준
돈과 대출금을 제외한
전 재산을 그녀에게 전했다.
욕망에 눈이 멀어
부와 명예를 위해 밤낮없이 몰두했던 그는
의사 면허증만 가진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친구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을 들으며
부자를 만났으니 다시 시작할 거란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오래 전 그와 함께 즐겨 듣던
Lisa Ono의 "pretty World" 를 들으며
침대 이불속에서 울었다.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녀는 운다.
그가 자신과 헤어지고
1년 만에 결혼한 것이 억울해서인가.
아직도 그를 사랑해서인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신의 인생이 불쌍해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