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지적허영심
k를 만난 건 신촌 맛집으로 유명한 한 초밥집이었다.
K는 다음 발령 전,
신촌에 있는 대학에서 1년 동안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에 보건정책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했다.
몇 년 만에 만난 K는
'우리 50대가 맞구나..'
현실을 깨달을 정도로 나이 들어 보였다.
공부한다고 백팩을 메고 대학생 같은 복장으로
약속장소에 나왔지만
눈가와 얼굴 가득 주름이 나이를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다.
" 나 많이 늙었지?
몇 개월 동안 승진공부한다고 골다공증도 생기고
무슨 고시공부하는 것보다 힘들었다.
이제 진짜 공부는 질린다"
질린다면서 왜 또 공부하냐는 내 질문에
보건정책은 재미있을 줄 알았다나.
정년퇴직 이후.
머리 쓰는 일 외에 뭐든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과나 배를 따는 일이 아주 재미있어 보여서
한동안은 그런 일을 할 거라고 했다.
정말 그럴 거냐고 했더니
오늘은 부산, 내일은 제주도, 이렇게 옮겨 다니면서
사람들과 여행도 하고 그렇게 살 거란다.
진지하게 말해보라고 독촉하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나 진지해. 정말 그렇게 살 건데. 넌 뭐 하며 살고 싶은데"
"나? 난 통장에 10억 정도만 있으면 도서관 다니며 책 읽고 글 쓰며 살고 싶지"
"그렇게 살면 돈도 별로 들지 않을 것 같은데 돈은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한데"
"그래야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것 같아서.
애들한테도 해주고 싶은 거 하면서
마음 편하게 "
"왜 애들한테 그렇게 해줘야 하는데, 학교 시켜줬으면 지들이 알아서 해야지.
난 대학 다닐 때부터 혼자 다 알아서 했는데"
여기서 우리의 대화가 잠시 멈췄다.
대학원에서 의료경영 관련 공부를 하며
K를 처음 만났다.
소심해 보이는데 자기 생각이 분명하고,
교수님한테도 따박따박 막힘없이 이야기하던 그녀.
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가 웃지도 않고 그녀가 했던 말.
"나 시골여자같이 생겼지만 나 서울여자야"
그때부터 그녀가 편하게 다가왔다.
K는 어떤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이 이론의 근거는.."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을 즐겼다.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 그녀의 주장에는 항상 이론적 근거가 분명했고
근거를 설명하는 것이 그녀의 화법이었다.
K는 차분한 목소리로 근거를 설명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날 만남의 목적은
몇 년 만에 아들의 결혼식 청첩장을 전한 나에게
참석은 못했지만
많은 축의금을 보내줘
고마움을 전하고
크게 한턱내야 한다는 내 의무감으로 시작해서.
K의 정년 이후 삶에 대한 이야기,
성인이 된 자식들은 각자 알아서 잘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
종교와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한
무슨 word report에 나온 연구결과라며
근거설명..
K는 독특한 친구다.
자주 연락하지 않지만,
나를 생각하는 그녀의 마음이
아들 결혼식에 축의금을 보내준 것으로 표현된 듯하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중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한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가'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오는 내가 좋아하는 질문.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내 안에 있는
돈을 배려와 존중의 가치로 연결시키는..
그 가치를 포장하려는 지적허영심을 가만히 들여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