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감정 사이에서
딸은 드디어 뉴욕에서 두바이로 돌아갔다.
뉴욕에 머물던 스물다섯 명의 승무원을 위해 회사에서는 비즈니스 좌석을 준비해 주었다고 했다.
처음으로 비즈니스석을 이용해 본 딸은 조금 신이 난 듯 느껴졌다.
하지만 남편과 나의 마음은 달랐다.
비즈니스 좌석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나,
두바이로 돌아가는 딸의 안전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뉴욕에서 두바이로 향하는 항로는 과연 안전한지,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평온할지 걱정이 앞섰다.
딸에게는 차분한 마음으로 회사의 지침과 안전 안내에 따라 행동하라고 당부했다.
계속해서 강조하게 되는 말은 '차분하게'였다.
역설적이게도 딸은 의외로 담담한데 내 마음은 정작 차분해지질 못했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다행히 두바이에 도착한 딸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공항은 고요했고, 2월 28일 두바이를 떠나기 전과 다름없는 분위기라고 했다.
뉴욕에서의 긴장과 불편함도 두바이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말끔히 사라졌노라 했다.
3월 10일까지도 두바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고요하다고 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3월 11일에는 우리 부부가 딸을 보러 갈 예정이었지만,
계획을 바꿔 딸이 한국에 오기로 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이 표현은 현실감이 없다.
...
어제, 딸은 마침내 한국에 도착했다.
딸이 두바이를 떠난 뒤, 이란의 공격으로 공항에 잠시 소동이 있었다는 기사가 났다.
다행히 큰 인명사고는 없었고 공항 운영도 정상화되었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몇 번이나 '다행'을 경험했다.
두바이에 긴장이 고조될 때 딸은 뉴욕에 있었고,
다시 두바이로 돌아왔다가 곧바로 한국으로 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오늘 포털에서 한 기사를 읽으며 또 다른 감정을 느꼈다.
딸은 국내 뉴스가 너무 선동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인회 단체 대화방이나 동료들 사이에서도
한국기사를 보면 가족들이 더 걱정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현지 직원들은 오히려 담담한 분위기라는 말도 덧붙였다.
기사의 댓글들을 읽어 보았다.
"오히려 이 기사를 보고 한국인 승무원들이 회사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다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현지 분위기와 전혀 다른 기사입니다."
"팩트 확인 제대로 하고 기사 작성하세요"
기사내용이 짜깁기한 것 같다는 댓글도 있었다.
애초에 그 기사는 공식 문서나 확인 절차 없이 제보에만 기반하고 있었다ㆍ
'~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팩트체크 없이 추측과 제보만이 혼재된 문장들을 읽으며 화가 불쑥 치밀었다.
불안감을 조성하는 듯한 내용을 보며 기자의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 줄의 문장이 마음을 흔들고,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불안을 키우기도 한다.
그 글은 진실을 전하려는 기사였을까, 아니면 그저 감정을 자극하려는 기사였을까.
뉴스는 세상을 보여 주지만
그 세상은 언제나 특정한 시선으로 재구성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딸은 뉴욕과 두바이를 거쳐 한국으로 와, 안전지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부모의 딸들은 두바이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내 마음도 마냥 편치만은 않다.
그래서인지 사실을 왜곡하며 불안을 부추기는 듯한 기사에 오늘따라 유독 비판적인 눈길을 거둘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