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일'이란 때로는 존재의 의미.
일을 통해
때로는 존재의 의미를 느낀다ㆍ
“나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 질문이 요즘 자주 마음에 머문다.
지난주,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억지로 처리하다가 작은 실수를 했다.
사업장 교육 담당자들에게 카톡 안내를 보내면서
마지막 확인을 하지 않은 채 발송해버린 것이다.
아주 사소한 실수였지만,
그 사소함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왜 그랬을까’ 하는 자책이 따라붙었다.
일을 사랑하지만,
때로는 일로 인해 나 자신이 싫어질때가 있는 있다.
그런데 오늘, 뜻밖의 연락이 왔다.
3년 전, 열심히 제안서를 만들고
대표와 임원 앞에서 프레젠테이션까지 했지만
결국 다른 교육원을 선택했던 한 사업장의 담당자였다.
“올해는 팀장님께 맡기고 싶어요. 다시 제안을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마음이 조금 떨렸다.
교육비도, 조건도 그때와 같다고 했더니
그는 미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요. 같이 진행하죠. 대표님도 기억하고 계세요.”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였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한마디에 모든 피로가 녹아내렸다.
3년 동안 명절이면 안부를 전하고,
잊히지 않도록 꾸준히 교육 정보를 보내왔던
나의 작은 정성과 끈기를
그가 기억해준 것 같았다.
지난주에는 모든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몸도 마음도 공중에 떠 있는 듯했는데,
오늘의 ‘떠 있음’은 전혀 달랐다.
기쁨과 보람으로 충만한 상태.
50대 여성인 나에게 ‘일’은
내 안의 열정을 깨우고 세상과 연결되는 창이다.
무언가를 이뤄냈을때의 뿌듯함,
거기에서 비롯되는 자존감은
내 삶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준다.
언젠가 재미삼아 본 사주에서
“평생 일을 하며 살아갈 운명”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인복이 많아 일이 잘 풀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많은 말 중 좋은 부분만 믿기로 했다.
그게 인생을 단단히 살아가는 내 나름의 방식이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일의 본질적 즐거움보다
그 일을 통해 얻는 경제적 보상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때가 많다.
그것은
정성을 다한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답이다.
그래서 웃을 수 있고 다시 나아갈 수 있다.
평생 일을 하지는 않겠지만,
일을 통해
때로는 존재의 의미를 느낀다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