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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명찬 Feb 06. 2016

엄친아의 역사

마음아, 안녕


그의 어머니가 동네 아줌마들을 모아놓고 그의 상장을 보이며 입을 여는 순간, 침 튀기는 교만의 역사는 시작됐다. 그것은  커가면서 피해갈 수 없는 통과의례가 되었고, 어머니에게는 신앙에 맞먹는 기쁨이자 희망이었다. 그렇게 별 선택의 여지없이 ‘잘 생기고 잘 나가고 뭐든 잘하는 아들’은 선포됐다.


진짜 스타로 보이기 위한 그의 노력은 힘겨웠다. 어머니가 보지 못하는 것은 보이지 않으므로 가려지고, 봐도 되는 것은 그의 노력에 의해 그럴싸하게 포장되었다. 생각건대, 이런 착시 현상들은 어머니가 어느 순간 실상을 깨닫고 ‘포기’를 선언해야만 그쳐지는 것들이었다. 브레이크 장치 없는 바퀴랄까.



물론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착한 선택은 늘 어떻게든 ‘진짜’로 살아보는 것이었다. 세월이 약이라고 믿어보기도 하며 반듯해 보이는 길을 향해 애써 걸어갔다. 거기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아이들의 아빠가 되었다. 이제 교만의 역사는 어머니로부터 아내와 아이들에게로 명맥이 이어졌다.


요즘 그는 생각한다. 교만한 남편이요 아빠로 사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지탱할 힘이 되고 주눅 들지 않고 잘 살 힘이 된다면 이런 ‘교만’은 봐줄만한 게 아니겠느냐고. 물론 잘난 분들, 세상에 넘쳐나는 걸 안다. 겸손하려 애쓰지 않아도 내가 있는 자리 자체가 겸손한 자리니까.



그래서 교만의 역사는 성스럽게 오늘도 존재한다. 어머니, 아내, 아이들이라고 그 오랜 세월 속에서 판을 친 ‘가짜 엄친아’를 몰랐겠나. <나>에게는 최고의 어머니요, 아내요, 아이들이듯 내 자식이라서, 내 남편이라서, 내 아빠라서 무한한 믿음으로 최상의 격려를 하고 있었던 것을 어찌 모르겠나.


*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같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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