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인생, 명품 요리를 꿈꾸다
서로 부둥켜안고, 바라보며 말없이 웃고, 뜨거운 눈물을 왈칵 쏟고,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고, 모든 게 한꺼번에 이해되고, 세상이 다 내 것 같고, 무릎 꿇어 신에게 깊이 감사.
이런 드라마틱한 날이 저절로 오는 게 기막힌 반전은 아니지요.
항상 정해진 길을 가던 사람이 어느 날, 늘 가고 싶어 했던 길로 슬쩍 방향을 틀 때가 소름 돋는 반전이지요. 호들갑 떨지 않고 조용히, 심지어 미소를 띠고 눈은 반짝이며.
끌려 다니는 삶을 누가 바라랴. 하지만 세상살이,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실력으로 겨루자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노는 놈까지 등장한지 오래. 로또 같은 요행을 바라자면 천문학적 확률 속으로 들어앉아 내 차례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이런 처지, 저런 상황을 다 받아들이고 속 편히 살 아량도 부족하다. 제 성질을 못 이기니 수시로 울화가 끓고 홧병을 달고 산다.
어느 특정 환자의 얘기가 아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라면 일상다반사로 만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자기주도의 삶을 살지 못하는 건 세상만의 탓이 아니다. 자신의 의사와는 반하는 방향으로 끌려가며 “어쩔 수 없다” 말할 때에도 계산이 섰고 영민하게 선택했고 결정했다. 그러니 그 다음 상황은 지극히 상식적일 수밖에. 예상을 벗어날 일 없이 뻔하게 살게 되는 거다. 이런 조건에서 예외란 발생하지 않기에.
여기서 말하는 예외란 모험을 뜻한다. 그리고 모험은 말이나 근사하지, 관광과는 차원이 다르다. 행복한 결과만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현실감이 커질수록 모험 걸기란 더욱 쉽지 않다. ‘할 줄 몰라서’가 아니고 ‘무서워서, 싫어서, 불확실해서, 장담 못해서’다. 나름 발휘한 지혜의 산물이다. 일등은 아니더라도 일류의 삶을 살자는 말에는 의견이 없다. 어떻게 살든, 무엇을 하든 늘 똑 떨어지게 명쾌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왕이면 괜찮은, 좋은, 선한, 바람직한, 성공적인, 귀감이 될, 칭찬받을만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흰 것과 검은 것의 스펙트럼, 그 사이 어딘가에 모호하게 있었음을 번번이 확인하곤 한다. 이 인생은 적당히 비겁했고 때로는 갑으로 변신해서 열을 올렸고 진짜 가해자를 대신해서 약자를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를 지키기 위해 합리화하고 정당성을 주장했다.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 남들도 다 그러잖아. 원래 다 그런 거잖아.”
이런 태도 속에 참신한 예외는 없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게 안전해 보이고 속 편하다면 모험은 어울리지 않는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판단기준과 가치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가?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는 접어놓고 좀 생각해보자.
그렇다. 생각으로부터 문제풀이는 시작되고 예외는 태동한다. 사람은 생각 좀 하고 살아야 한다. 이 생각은 둥둥 떠다니다 사라지는 구름 같은 생각이 아니라 번개와 천둥을 일으키고 폭풍우를 내리는 단초가 되는 생각이다. 무엇을 보든, 무엇을 하든 판단과 행동이 있으려면 먼저, 생각해야 한다. 생각의 주체는 오로지 ‘나’인 만큼 생각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절대 진리를 만나든, 생활 속에서 체득하든 지식들은 선별적으로 걸러져 불규칙하게 마구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한다고 여기면서 단지 자신의 편견들을 재배열하고 있다.”는 윌리엄 제임스(미국 심리학자, 철학자)의 말이 과연 맞다. 참, 무서운 사실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 늘어갈수록 머릿속에 채워진 지식 덕분에 ‘사람은 미완성,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만 거듭 확인되곤 한다.
그렇다고 머릿속은 늘 뒤죽박죽이니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자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오히려 M. 스캇 펙의 말처럼 “성장하는 삶을 위해 죽을 때까지 학습”하며 살아야 마땅하다. ‘모르는 게 약’과 ‘아는 게 힘’인 사이에서 탄생할 지혜는 분명히 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삶을 위해서 생각이 뜬구름을 벗어나 찰진 성찰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포기하지 말고 생각의 길을 부단히 열어가야 한다.
생각 정리가 잘 안 될 때에는 ‘쓰기’의 힘을 빌리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쓴 것을 읽어보고, 다시 써 보면서 마음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머릿속에 저장해놓은 사전’의 오류를 하나씩 바로잡아 나갈 수 있다. 목표는 쓰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그럴 수 있다. 그동안 상식이라고 여겼던 일들이 알고 보니 지독한 편견, 비상식이나 몰상식이라고 여겼던 일들이 남들에게는 상식일 수 있다. 또는 특별한 계기와 극복 과정을 통해 머릿속 사전의 정의가 통쾌하게 수정될 수도 있다. 이것이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성질이고 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 바꿀 수 있다!
해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은 평범한 짬뽕일 수 있지만 머지않아 명품 요리의 반열로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손대는 순간, 짬뽕이 ‘금’으로 바뀔 일은 없다. 그런 걸 기대한다면 여전히 복권을 사서 일주일 품고 다니며 주문을 읊조리며 사는 편이 낫다. 실력을 갈고 닦아 누구라도 혀를 대는 순간 ‘맛있다’고 인정하게 만들 수는 있다. 생각에서 성찰로, 성찰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진인眞人의 삶을 향한 진지眞知한 시간과 노력은 그동안의 예외에 길을 터 놀라운 ‘반전’을 만들어내 줄 것이다.
생계가 걸렸다고 해도, 곱게 품어온 꿈마저 주저 앉혀서는 안 된다. 세상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담과 벽 앞에서 부정하고 위축되고 졸아들 일은 아니다. 이런 비겁, 비굴한 태도는 세상으로부터 온 게 아니고 사람 마음이 드러난 것임을 기억하길. 냉정하게 현실감을 갖는 건 바람직하지만 꿈의 나아갈 길을 스스로 막고 요행과 처분을 바라는 마음으로 대박을 바라며 살고자 한다면 이만큼 망상적인 현실인식도 없다. ‘반전’은 수동적일 때 결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전은 ‘자기 주도’의 삶에서 능동적으로 일어난다. 남을 내 뜻대로 끌고 가는 것이 만족스런 자기주도의 삶이 아님은 물론이다. ‘나’를 스스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자기주도의 삶이다. 그래서 자기 주도의 첫걸음은 그동안 배운 지식과 지혜를 모두 동원해서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반전의 기회를 찾아냈을 때 “깨달았네”,“답을 얻었네”하며 호들갑 떨지 않고 의젓한 결과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차지 않은가. 조용히, 가만가만히, 확신에 차서, 미소까지 띠고, 반짝이는 눈으로, 마땅히 봐야할 것을 바라보며,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는 당신!
그래서 이 모험은 뒤를 생각하지 않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앞을 열어 제치는 힘을 생생히 경험하는 것이 본질이며, 반전의 매력이다. 그러니 ‘남의 눈’이며 ‘모양새’와 도무지 무슨 상관이랴. 꿈만 꾸면 그저 꿈이고 해낸다면 생생한 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