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즐길 수도 없을 때

by 손명찬

바야흐로 봄. 따뜻한 햇살이 와 닿지 않고, 여린 잎이며, 화사한 꽃이며 눈에 들어오지 않는 여인이 있다. 정신은 아뜩, 한숨이 절로 나는데 봄은 무슨 봄. 그녀의 고민은 이렇다.


“아이가 갑자기 낯선 거예요. 산만한 덩치에, 버럭버럭 화를 내면 제압(?)이 안 돼요. 내 배에서 나온 녀석이 맞기나 한지.... 눈치 보기도 힘들고, 맞춰주는 것도 힘들고, 어떤 때는 무서워서 내가 말대꾸도 못 하겠다니까요.” 고3 수험생 엄마 M씨의 하소연이다. 그런 때마다,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 물었다. “밀리면 안 되겠다 싶어, ‘밀당’을 하느라고 하는데...그러고 나면 엄마노릇 잘하고 있는 건가 싶고 울화가 치밀어서...휴...선생님...앞으로 일 년, 이러고 살아야겠지요?”


아이 키우는 집이라면 통과의례처럼 겪는 일이라고, 간단히 볼 문제는 아니다. 이 가정에게는 ‘처음 겪는’ 대단한 위기 상황이다. 죽고 살 일이야 없겠지만 지혜를 모으는 일이 필요하다.


“일단, 아이가 또 엄마에게 도발하면, 씩 웃으며 이렇게 말해 보세요. “우리 아들. 오늘 또 전투모드네. 아이고, 무서워라. 엄마는 작전상 후퇴!” 그리고, 얼른 피하세요. 소파에 앉아서 팔짱끼고 앉아 있지 마시고. 화난 얼굴 하지 마시고. ‘엄마의 잔소리’를 기다리는 아이의 예상을 깨주시는 거지요. 평상시대로 할 일을 하세요. 아이에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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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얼굴이 금방 환해졌다. 다음날, 엄마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희한한 일이 벌어졌어요, 선생님. 말씀대로 했더니, 바로 효과를 봤어요!”


아이가 당황하더란다. 그리고 잠시 후, 엄마에게 와서 초등학생 같은 얼굴로 웃으며 사과하더란다. 엄마가 자신 때문에 마음 고생하는 거, 잘 알고 있다고. 쌓이는 스트레스, 받아줄 곳이 엄마 밖에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거라고.


물론 이렇게 쉽게 해피엔드는 아니다. 이제 시작이고, 반복할 테고, 약발이 먹힐 때가 있고 씨알도 안 먹힐 때가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3 학생도, 가족도 처음 겪는 이 상황이 지금, 여기, 이 순간의 현실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견뎌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번 가고 나면 다시 오지 않는 시간, 귀한 경험,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보자. 나만, 내 가족만 겪는 일이면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누구나 겪는 일이니 의젓해져 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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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가족과의 관계가 더 힘든 법이다. 오죽하면 “가족이 웬수”라는 말이 다 있을까. 사랑한다는 이유로 말도 거침없이, 상처주기 일쑤인 경우가 너무도 많다. 기대하는 만큼 서로 충분히 힘이 되어준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부모든 자식이든 슈퍼맨이 아닌 보통사람일 뿐이다. 서로 부응해주지 못하는 상황에 발휘되어야 할 것이 사랑이다. 갈등상황에서 “다 잘되라고 이러는 거야.”“내가 오죽하면 그래?” 하는 말이 답은커녕 위로조차 될 리 없다.


고3 수험생의 스트레스와 불안 옆에는 엄마의 스트레스와 불안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입시’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가정 안에는 다양한 갈등과 어려움을 겪는 가족들이 혼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불안과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험생, 봄철 우울증이 있는 엄마,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년의 아빠, 수험생 때문에 기를 못 펴고 사는 형제들이 함께 모여 있는 것이다. 확장해보면 이미 우리가 겪고 사는 일상다반사의 모습이고 상황이기도 하다.


게다가 몸과 마음은 하나(心身一如)여서 신체 건강의 불균형이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거나, 마음을 위축시키는 일들이 몸의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요즘 같은 봄철은 가을과 겨울을 지내며 일조량 부족, 운동 부족 등이 호르몬에 영향을 끼쳐 우울감을 느끼기 쉽다고 한다. 특히 고3 자녀를 둔 부모의 나이 정도가 되면 중년에 겪는 신체변화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때이기도 하다.


따라서 몸 상태와 마음 상태가 ‘예전 같지 않고’ 힘겨울 때 주눅, 위축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자연스러운 변화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자신감으로 헤쳐 나가 보자. 무엇보다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모두들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즉, 온 가족이 입시 영향권 아래 있으면서, 동시에 수험생은 수험생 자신의 문제를 풀고 있고, 엄마는 엄마 자신의 문제를 풀고 있고, 가족의 구성원들도 각기 이 환경을 둘러싼 자신의 문제를 풀고 있는 중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격려다. 혼자만 받고 나머지는 희생할 관계란 세상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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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분주하기만한 현대사회 속에서 복잡한 이해관계, 소통의 부재로 신체 건강에 못지않게 우리 가족의 마음건강관리가 중요한 시절이 된 듯싶다. 아무리 힘겨워도 지나간 시간의 상처나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두려움에 발목을 잡힐 수는 없고, 오늘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 오늘은 미래를 위해 준비를 위해서만 의미 있는 날은 아니다. 오늘은 오늘로서 충분히 행복한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지금, 여기, 이 순간!


때로 힘겨운 일이 있을지라도 주고받는 따듯한 말 한 마디, 다정한 격려의 말 한마디가 오늘을 빛나게 하고 살아있게 한다. 우리가 그동안 살면서 알아온 모든 개념의 ‘사랑’에 ‘~ing’를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때만이 유일한 현실이다. 그것이 진행형으로 이어져 가는 곳이 미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심장전문의가 처음 한 말이란다. 이 말, 스스로 가슴에게 따듯하게 해주고, 그 가슴에서 나온 온기를 곁사람들과 나눠보는 오늘, 어떨까. 햇살도 사랑스럽고, 꽃도 예쁜 새 봄이다. 알고 나면 못 보던 것도 보인다. 다 사랑으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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