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보다 위와 장이 먼저 반응하던 벤처회사 기획자 시절이 있었다. 신경을 많이 쓰고 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고충을 안다. 그날 아침도 출근하자마자 스트레스를 제대로 받고 예외 없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화장실은 만원이었다.
당시에 다니던 회사는
멋진 고층 건물의 12층에 입주해 있었는데 규모에 비해 화장실이 좀 작은 게 흠이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북새통이 되곤 했다. 문제의 그날은 여느 때보다 더 붐볐다. 조금도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평상시와는 발상을 바꿔 다른 층으로 원정을 떠나야 했다.
각 층의 화장실은
비상구 옆에 위치해 있었다. 비상구 계단을 따라 한 층을 어기적거리며 내려갔다. 그곳 역시 만원이었다. 총총히 다시 한 층을 내려갔다. 또 만원. 또 한 층을 내려갔다. 아, 그렇게 12층에서 6층까지 내려갔다. 6층! 그곳에는 평화가 있었다!! 6층은 입주한 회사의 수가 다른 층보다 훨씬 적어 화장실이 아예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볼일을 평화롭게
보고 싶을 때에는 아예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갔다. 어느 날, 볼일을 마치고 유유히 손을 씻고 있는데 6층 입주자로 보이는 사람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는 게 아닌가. 얼결에 인사를 받았는데, 볼일 생체리듬이 서로 비슷한지 그날 이후로도 가끔 아침에 화장실에서 마주치고, 또 서로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곤 했다.
그 즈음이었다.
지인 몇몇이 모여 벤처회사를 창업했는데 우연하게도 같은 건물 9층으로 입주했다. 오호, 아지트가 생긴 것이었다. 나는 일하다가 잠시 쉬고 싶거나 차 한 잔이 생각나면 9층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음료수도 알아서 찾아 마시고 지인들과 즐겁게 노닥거리다가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 출근길이었다.
1층에서 문이 막 닫히려는 엘리베이터에 뛰어가 탔다. 헐떡이며 문득 보니 우리 회사 사장님, 9층의 지인들, 그리고 6층의 지인이 우연히도 함께 모인 거였다. 나는 ‘모든’ 사람들과 농담까지 주고받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6층의 지인이 먼저 내리고 곧 9층의 지인들이 우르르 내렸다. 10층쯤 올라갈 무렵에 사장님께서 다소 놀란 얼굴로 입을 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