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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명찬 Mar 17. 2016

물 위를 걷기

깊게 패인 상처

잔잔한 물가에 와 있습니다.

내내 그리워하던 호숫가입니다.


외투를 벗습니다.

신발을 벗습니다.

양말을 벗습니다.


조금이라도 홀가분해질 수 있다면 좋으련만

기분이 좋으면 물장구라도 쳐보련만

들여다보는 물속은 헤아릴 수 없이 깊습니다.

마음속이야 더더욱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라도 깊게 패인 상처를 얻을 때도 있습니다.

살피지 못하고 마음 같지 않게 사는 게 문제이겠지요.

저절로 낫기도 하고, 약으로 낫기도 하지만, 곪기도 합니다.


물가로 오세요.

회한을, 자존심을, 근심을 한 꺼풀 정도만이라도 벗어 보세요.

그리고 맨 마음을 물 위에 얹어 보세요.


벗으면, 물 위를 사뿐사뿐 딛고 하늘로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신이 내미는 손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물속을 오래 들여다보지는 마세요.

오래 머물지는 마세요.

여기서, 갑자기 모든 게 분명해지고 해결되지는 않아요.

돌아가야 할 곳에서 해결할 일들이니까요.


양말과 신발을 신고, 외투를 챙기세요.

다시 그리운 날에 또 만나요.


*

상처가 아니라 곪은 게 그렇게 무겁습니다.

마음에 담고 있었으니 마음은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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