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뭐냐, 묻는다면
“꿈이 뭐냐?”
어린아이가 질문을 받으면 눈에는 바로 생기가 돈다. 초롱초롱, 반짝인다. 그리고 입을 열면 평소 마음에 들었던 직업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걸 그룹, 간호사, 선생님, 미용사, 소방관, 요리사...” 토 달 일 없다. 그냥 머리를 쓰다듬으며 복을 빌어주면 된다. 청소년으로 넘어가면 상황은 조금 다르다. 자신의 현재 성적과 관련이 ‘깊다’는 현실을 이미 깨닫고 있음을 보게 된다. 중학시절을 보내고서 특목고, 외고, 과학고, 자율형 사립고 등으로 넘어가지 못한 아이들은 일반고로 넘어간 ‘보통사람’으로서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해야 ‘꿈의 대학’을 갈 수 있는지 다 자라지도 않은 뼈가 벌써부터 저린다. 대학생으로 넘어가면 상황은 보다 절실, 살벌해진다. 꿈은 멀어지고 곧 다가올 무서운 현실에 대한 고통이 몸과 마음을 힘겹게 한다. 이제 어른으로 넘어가 보자. 무슨 설명이 따로 필요할까. 당신에게 물으면 되겠네. 당신의 꿈은 안녕하신지.
어느 날, 우량회사로 알려진 P기업의 오너가 내게 말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을 보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꿈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를 물었다. “그냥 자기 자리, 자기 할 일에 만족하는 것 같아서요. 창의적 발상도 없고, 욕심도 없고...” 그에게 말했다. “말씀하신 그분은 꿈을 이룬 사람인지 몰라요. 이 회사에 들어오는 게 꿈이었다면. 지금 맡고 있는 일을 하는 게 꿈이었다면.” 그는 나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에이, 무슨 꿈이 그 정도 밖에 안 돼?” 그럼, 모든 사람들이 기업의 오너 정도 꿈은 꿔야 제대로 된 건가? 물론, 속으로 말했다.
지난해 말, TV시리즈로 큰 인기를 모은 미생. 사회생활의 산전수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공감의 띠를 만들어냈었다. 재벌급 부자 아버지와 귀족 어머니, 잘난 본부장(?) 아들이 주로 등장하는 신데렐라형 대리만족 드라마들과는 다른 핏줄을 가진 것만큼은 분명하다. 우리는 모두 동화 같은 미래를 꿈꾸며 살지만, 부딪히는 현실은 꿈에게 덧입혀놓은 파스텔톤의 색감, 긍정 마인드, 그리움 등에 붙여 놓은 자신감을 무너뜨리곤 한다. 누군들 이 상황에서 자유로우랴. 자존심 망가지고 쪼그라든 마음은 또 어찌하랴. 창의적 발상은 윗사람에게 공을 빼앗기고, 욕심은 사람을 잃게 하는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지금 자리도 유지하기 힘겨운 사람이라면 더더욱.
‘나’를 겨냥한 듯한 덫과 늪, 수시로 만나는 벽과 담... 생계를 걸어놓고 모험이 일상이 된 어른에게는 ‘무엇이 되는 꿈’을 논하는 것이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이 어른이 되도록 꿈에 대해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꿈은 절대 그런 게 아니다. 꿈은 ‘이 다음에 커서 무엇이 될’ 직업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직업 영향이 가장 크다면, 세상에서 각광 받는 몇 개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모두 실패자loser라는 뜻이 된다. 원했던 직업을 가지지 못하면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어렸을 적 꿈을 이룬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매달려 노력해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살짝 변절하고 자기합리화의 길을 가야 하는 건가.
‘하면 된다’는 말, 야박하게 여기에 끼워 넣지 말자. 그럼, 당신이 노력을 덜했단 말인가. 절실하지 않았단 말인가?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세상에는 내 뜻, 내 맘 같지 않은 일들이 많다는 거. 내 뜻보다는 ‘우리’의 뜻을 위한 배려나 양보도 필요하다는 거. 그게 뭔지 잘 몰라서 좋아보였던 일도 있다는 거 등등. 직업적 꿈을 이룬 다음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 다음에는 또 무슨 꿈을 꿔야 하나?
그래서 꿈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다. 꿈은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더 행복해지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내 삶이 가치 있어지는지가 본질이다. 꿈은 언제든 바꿀 수 있고 새로 꿀 수도 있다. 죽을 때까지 몽실몽실, 꿈틀꿈틀 진행형인 것이다. 그래야 꿈다운 꿈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룰 꿈, 소속된 세상과 함께 나눌 꿈도 소중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좋은 꿈이다. 그래야 의젓한 꿈이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가 도구가 되고 희생이 되어야 한다면 그건 꿈이 아니라 욕망이다.
오늘, 지금, 이 순간,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그것을 생각하면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뛰고 눈이 반짝이고 입에 침이 저절로 고이는가? 그 꿈을 나누면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가? 그 꿈이 알을 까면 그 덕분에 나도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끝으로 내 꿈을 소개한다. 사람이 되고 싶다. 누가 보더라도 사람다운 사람이. 마늘과 쑥,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먹겠다. 때로 곰탱이에, 때로 이빨과 발톱 잃은 호랭이 꼴을 면치 못하지만 언젠가는 꼭 사람이 될 거다. 어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