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명찬 Dec 21. 2019

공존 3

흉상과 감사패


# 가는 길

     

약속 장소에 갔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바로 옆에 큰 공원이 있어 잠시 거닐어 보기로 했다. 호수가 있어서인지 겨울 공기가 쾌적했다. 공원 언저리에는 흉상 여럿이 사이사이 세워져 있었다. 들여다보니 '의사자'들을 기념하는 흉상들이었다.      


의사자란 타인을 죽음에서 구하고 자신은 의롭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 갑작스런 상황에, 직관적으로 숭고한 반응을 한 사람이다. 언제든 튀어나올 선한 의지가 충만해 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흉상들의 설명은 워낙 간략해서 히어로서의 스토리텔링은 알 수 없었다. 최근 인물이었다면 바로 알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잘 몰라봐줘서 미안한 마음.     


# 오는 길 


전철에 앉아 핸폰으로 기사 하나를 다.


3개월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회사원 K씨. 던 병이 악화돼 3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병마와 싸웠다. 연로하신 아버지와 단 둘이서 살던 그녀는 병세가 악화되어 가던 중에 스마트폰에 유서를 써 놨다. 직장 다니며 모은 전 재산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한다는.

그녀는 결국 현실 속의 산타가 되어 아이들에게 큰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기고 세상을 떠났다.     

  

어린이재단에서는 감사패를 만들어 고인의 아버지에게 전달했다.

아버지는 감사패에 새긴 딸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고. 그는 "우리 딸이 좋은 일을 해서 하늘나라 좋은 곳에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

그래그래.

히어로들의 스토리를 알고나면 하나같이 코가 찡하고 가슴 먹먹하겠지.

음에 봄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고함을 넘어 거룩함으로 나아간 삶이다.

'인생 한번 굵게들 사셨네.'

어느 시대, 어느 시절에도 의인은 존재한다.

덜커덩거리는 이 세상이 그냥 콱, 망하지 않고 지탱되는 아름다운 비밀 아니겠나.



작가의 이전글 공존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