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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명찬 Mar 18. 2020

궤적, 기적


당신이 밤을 지날 때 나도 밤을 지나고

당신이 꿈을 꿀 때 나도 꿈을 꾼다.


당신이 길을 나설 때 나도 길을 나서고

당신이 버스를 탈 때 나는 지하철을 탄다.


당신이 이쪽을 보고 앉을 때 나는 저쪽을 보고 앉고

당신이 이쪽 모퉁이를 돌 때 나는 저쪽 모퉁이를 돈다.


당신이 멈춰 설 때 나는 지나가고

당신이 빨리 지나갈 때 나는 뒤늦게 지나간다.


당신이 거리를 지나갈 때 나는 거리 밑을 지나가고

당신이 여기에 도착할 때 나는 거기에 도착한다.


당신이 거기서 기다릴 때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당신이 내게 전화할 때 그 순간마다 내가 당신에게 전화한다.


당신이 일어설 때 나도 일어서고

당신이 이번엔 지하철을 탈 때 나는 버스를 탄다.


당신이 그렇게 돌아갈 때 나는 그렇게 돌아온다.

당신의 밤과 꿈도 다시 돌아올 때 내 밤과 꿈도 돌아온다.


이렇게 안타깝게 끝없이 ‘못 만날 기적’은 없다.



가고 오는 한 결국 만난다.

외로움이 깊어진 아픈 여정이었다 해도 서운할 일 없다.

서로 ‘만날 기적’을 얻기 위해서였으니.

당신은 당신 자리, 나는 내 자리에서 기다리는 것.

겪어 보면 이게 가장 무서운 일이다.

여기에는 어떤 기적도 없다.

만날 기적을 보기 전에 잊을 날이 먼저 올 테니까.

나중에는 서로 영 몰라볼 테니까.

당신이 내게, 내가 당신에게 오가는 날들,

그 모든 시간과 그 모든 여정,

그 모든 마음이 이미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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