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색 형광펜을 갖춰놓고서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가끔 긋습니다. 때로 별표도 해놓습니다. 이거다, 싶으면 노트에 열심히 메모도 합니다. 책에 밑줄 긋기는 말려야 한다는 말이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읽은 책을 다시 꺼내들기가 좀체 쉽지 않은 입장에서는 노트라도 나중에 들춰보고 싶은 마음을 막지는 못합니다. 생각날 때 밑줄 친 부분이나 노트한 문장들을 읽어보면 기가 막힙니다. 전후의 이야기들이 연상되어 책 내용이 잘 떠오릅니다. 좋은 명언이나 격언처럼 지시어로 가슴에 다가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밑줄이나 메모를 찬찬히 보면 대부분 공감, 동감되는 이야기들 위주라는 겁니다. 심지어는 예전부터 알던 이야기들입니다. 그건 뭘 의미할까요? 제가 공감, 동감되지 않는 것은 밑줄을 피하고 노트에 담지 않으려 했다는 거, 게다가 잘 모르는 것은 물음표를 품지 않고 넘어가려 했다는 거, 어느 면에서는 완강히 거절했다는 거, 무의식중에 무심히 그랬다는 겁니다. OX 쪽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았다는 거, 살고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