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요리

문제보다 답이 더 어려울 때

by 손명찬


1.

오늘의 재료는 ‘문제 덩어리’입니다.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생각하나마나 당신의 가슴속이겠지요. 자, 이제 조심스럽게 꺼냅니다. 큼지막하네요. 괜찮습니다. 때로 클수록 요리하기가 오히려 편할 때가 있습니다. 찬찬히 살펴볼까요? 툭 튀어나온 곳, 움푹 들어간 곳, 변색이나 탈색이 된 곳, 또 알고 계신다면, 원래의 문제에서 변형된 곳은 없는지 잘 관찰해 보세요. 재료를 먼저 잘 이해하고 아는 것이 좋은 요리의 첫걸음입니다.

문제 덩어리를 도마에 올려놓으신 다음, 이제 칼을 골라보세요. 어느 문제 덩어리는 칼을 고르는 것만 보고도 시시하게 항복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문제 덩어리를 눈빛으로 압도하며 칼을 골라 보세요. 어떤 칼이 당신에게 걸맞고 적당한지는 오직 당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도와드릴 길이 없습니다. 네, 잘 고르신 것 같군요. 이제부터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수술용 칼만큼이나 날카로워 당신이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한 순간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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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손질에 들어갑니다.

문제 덩어리를 여러 개로 쪼개겠습니다. 결을 살피시면서 돌파해야 할 문제, 생각을 바꿔야할 문제, 기다려야 할 문제, 잊어야할 문제로 구분해 주세요. 확인이 되셨다면 머뭇거림 없이 단칼에 잘라주세요. 잘 자르셨습니다. 일단 잊어야할 문제는 쓰레기통에 버려주시고, 기다려야할 문제는 도로 가슴속으로 집어넣어 주세요. 이제 돌파해야할 문제와 생각을 바꿔야할 문제, 두 가지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돌파해야할 문제입니다.

이 재료는 도마 위에 올려놓고 채썰기 하듯 자를 겁니다. 잘게 잘라 놓고 보면 문제가 보다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문제 사이사이에서 답이 나오는 것도 흔히 있는 경우입니다. 훌륭하게 자르셨습니다. 자잘해진 문제를 보시니까 어떠세요? 보잘것없지 않나요? 그대로 드셔도 좋고 육회나 무채나물처럼 드셔도 좋습니다. 마음껏 요리해 보세요. 얼굴이 벌써 밝아지신 걸 보니 이 일을 즐기기 시작하신 듯 보입니다.


다음은 생각을 바꿔야 할 문제입니다.

굽고 삶는 방법도 좋습니다만, 오늘은 프라이팬을 이용해 요리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프라이팬을 따끈하게 덥힙니다. 이어 골고루 버터를 두른 후 재료를 올려놓습니다. 생각을 바꿔야 할 문제이니만큼 부침개하듯 널찍이 잘 펼쳐주세요. 아랫단이 노릇노릇 익었겠다 싶으면 뒤집어 주세요. 이때 생각도 얼른 한번 뒤집습니다. 몇 번은 뒤집으셔야 골고루 잘 익혀집니다.


앞의 문제보다는 오래 걸리고 손도 많이 가는 재료입니다. 그 속에는 문제 자체는 모호해져 버리고 당신의 상한 감정만이 응어리져 있기 때문입니다. 손바닥 뒤집듯 한다는 게 힘들겠지요. 십분 이해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생각도 살살 녹여줄 따끈한 프라이팬과 부드러운 버터가 필요했습니다. 감정의 문제이니만큼 이제 그만 용서하세요. 부디 이제 묶어놓은 것을 풀어주세요. 멀리 놓아주세요. 그리고 이제는 그만 새로운 생각을 품으셔도 됩니다.

오늘의 요리였습니다. 가슴속으로 도로 넣은 거, 잊지 마시고 잘 관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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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V 먹방처럼 문제를 다뤄봤다.

문제풀기의 과정은 “누가 그게 된답디까?” 하고 따지기 위한 것일 리 없다. 궁극의 목표는 어떻게든 그 물음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 문제를 요리해봤으니 이제 답에 대해서도 요리조리 한번 들여다볼까.


3.

문제보다 답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어쩔 수 없이 하늘에다 묻고는 행여 뭐라도 들릴까 봐 귀를 막아두고 싶을 때가 있다. 답이 난해하면 그게 다시 문제가 된다. 쉽게 묻든 어렵게 묻는 답은 쉬워야 한다. 다음 질문으로 술술 넘어가려면 그래야 한다. 답이 정해져 있으면 골치 아플 때도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문제를 갖고 산다. 생각 안 하는 사람보다는 낫다.


답은 생각과는 상관없이 시간을 보낸 사람에게 온다. 잘 보냈는지, 못 보냈는지는 그저 자신의 생각일 뿐. 생각을 안 해야지, 하는 생각에 힘들다. 그런 생각은, 들고 있는 문제는 제쳐두고서 나를 한없이 한심하게 만든다. 답을 맞히면 그 때부터가 함정이다. 문제풀이가 다 끝난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이다. 다 알아버린 듯 오해하기 딱 좋다. 이제야 고개 하나 간신히 넘어갔을 뿐인데.


삶은 문제를 내고 답을 푸는 과정이 아니라, 시간이 문제와 답을 어떻게 푸나 구경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경한 것을 기억해두었다가 요긴할 때 그저 잘 써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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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문제를 풀고 답을 이끌어내는 일.

당연히 시간이 걸리고 순서가 필요하다. 세상 일, 매번 한치 앞을 모른다. 내 맘 같지도, 당신 맘 같지도 않음은 물론이다. 어떤 좋은 기회를 얻어 극적으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고, 크게 깨달아 변화의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확률적으로 가장 확실한 것은 내 스스로 주도해서 중심을 잡을 때다. 단, 조바심은 금물. 억지로 ‘문제-답’을 이분법으로 단순화시키므로 최악의 적이다. 하물며 방치는 더더욱 안 될 일. 위장된 가짜 해결책으로서 억압과 다를 바 없다.


마음 같지 않은 것, 순서와 시간이 엉킬 수 있다는 것, 받아들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나씩 하나씩 추려보고 추슬러 보자. 가만히 보면 보인다. 진실한 것, 옳은 것이 입체영상처럼 떠올라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의 ‘보는 눈’이 작동하기 시작할 때 당신을 겹겹 에워싼 듯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와 답’은 그저 당신 삶에 입체감을 주고 풍요함을 더하는 배경이 된다.


정말 그렇다면 얼마나 근사한 그림인가. 이를테면 이런 그림. ‘크로노스(kronos)의 시간 속에서 눈을 반짝이며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있는 당신.’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누구와 있든지 간에 말이다. 존재는 시간의 엄연한 주인이다. 때로는 그게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간존재(Human-being)는 그 자체로 ‘절대’ 답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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