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결말

나는 폭탄이고 폭죽이다

by 손명찬


당신이 용기를 낼 때 신은 당신을 위해 사람을 보내고,

당신이 희망을 놓지 않을 때 신은 당신을 위해 천사를 보내고,

당신이 절망과 맞닥뜨린 후에는 신은 직접 나선다.

절망도 신에게는 끝이 아닌 거다.

당신의 흐름이 잠시 끊겼을 뿐이다.

방향과 도착할 곳을 알려주는 신호가 끊겼는가?

지금, 신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당신이 딛어내는 기도의 길로.



“토닥토닥, 올 한해도 수고했어요”


삶의 여정에서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친구가 말했다. “앞이 가로막힌 상황에서 가장 힘겨웠던 건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그리 가서 뭘 얻으려 했는지 갑자기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였어.” 맞다, 맞네. 앞을 향한 이유가 분명한 사람에게 벽과 담은 별것도 아니지. 그저 제거 대상일 뿐. 멀리 푯대 하나를 바라보고 옮긴 발걸음은 삐뚤빼뚤해 보여도 괜찮지. 여기부터 거기까지 하나로 이으면 분명한 직선. 똑바로 간 거니까. 문제는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하는 헷갈리고 자신 없어지는 마음이다. 대개 못 풀어낼 때의 주눅 든 마음이다.

답답함이 커지다 보면 그때그때 정답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정답을 말해줄 것만 같은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조바심이 솟는다. 그러나 내 상황과 입장을 모르는 채로 우주적인 선문답을 내놓는 사람, 어이없다. 게다가 “마음속에 있는 거죠!” 같은 말은 절로 기운 빠지게 한다. 사람을 영 못 믿겠으니 신앙으로 풀어보려고도 한다. “도와줘요!” 내 부름에 그때그때 온 우주가 달려올 것으로 믿어보고 싶다면 이 역시 답과는 거리가 멀다. 신앙의 본질은 극적인 기적이나 과잉해석이 아니라 일상 속의 커뮤니케이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불규칙하게 흘러 다니는 건 일상다반사. 실수와 실패로 점철되는 인생의 모순을 헤아릴 수도 없이 낳는다. 게다가 ‘이놈의 생각’은 부정과 의심일 때가 훨씬 더 많다. 정말 희한한 일은 이런 어둠의 본능을 가진 사람이 빛을 향하려는 해바라기 본성도 가지고 있다는 거. 여기에 우리가 살만한, 살아낼 단초가 있다.

올해도 우리는 나름 자신의 인생을 건 모험을 착실히 진행해왔다. 앞을 바라보면 헤아릴 수 없는 갈림길이 나오지만 돌아보면 누구라도 예외 없는 외길이었다. 그러니 그것밖에 못 했네, 난 이것밖에 안 되네, 하는 자괴감은 그만 덮자. 도무지 내 맘 같지 않은 일이 있는 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올해의 그 모든 선택 상황에서 요행을 따라다니지 않고 주체적으로 최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나의 최선을 다한 건 사실이다. 겸손을 더해도 사실은 사실인 거다.



열린 결말, 다음을 위한 장치


있는 모습 그대로 정리해 보자. 사는 날 동안에 필요한 결론은 정리를 위한 것이고, 정리는 다음 살 길을 위한 것. 그래야 우린, 씩씩하게, 뻔뻔하게 ‘다음’을 논할 수 있다. 때가 때이니만큼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다. 정리하는 사람마다 나름의 방식과 패턴이 있으니 표준정리법 같은 건 잊어도 좋다. 마음 가는대로, 차분하게, 진심을 넣어 돌아보기로 하자. 그러면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할 수도 있다.

무언가를 정리할 때 우리가 가장 흔히 실수하는 건 뭘까? 우리는 가치나 상황을 판단, 정리할 때 하나의 사실만 정답으로 남기고, 모든 가능성은 퇴출시키려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에서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든 빛과 어둠은 공존하고 교차하며, 동시에 시작하고 끝맺기도 한다. 오늘은 당신이 결론을 내는 방식을 한번 점검해 보기로 하자. 그리고 생생히, 그 결론대로의 현실을 겪는 내 모습을 그려보자. 이왕이면 환히 웃는 모습이 좋지 않겠나.

그래서 나를 위한 ‘열린 결말’을 스스로 만들어 볼 것을 권한다. 열린 결말이란 ‘작가가 작품의 결말부분을 명확하게 끝내지 않아 독자들이 직접 작품의 결말을 상상하거나 추리할 수 있는 끝맺음 형태’를 말한다. 열린 결말을 만들다 보면 일단 ‘다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버릇을 고칠 수 있다. 내 손으로, 내 뜻대로 ‘열린 결말’을 장치해 보자. 그러면 일단 맥없는, 김빠지는 결론은 없다. 오히려 그 화력에 깜짝 놀랄 폭탄이 된다. 속이 시원해질 거다.

열린 결말의 핵심은 ‘결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열린’에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치밀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의 끝, 그 다음을 활짝 열어젖혀 보자는 거다. 그러면서 멀리, 다음의 다음, 그 다음까지도 생각하며 살아보자는 거다. 대충 준비하고 아무나의 상상에 맡기려는 생각은 처음부터 꿈도 꾸지 말자.



커밍아웃, “나는 폭탄이고 폭죽이다”


포맷이 전혀 다른 이 열린 결말에 등장하는 독자는 오직 신이다. 만약 당신이 신앙을 갖는다면 반드시 그렇다고 믿어도 좋다. 열린 결말을 준비하면서 삶의 현장에서 너무나 가까이 신과 소통하고 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기도의 길을 열고 신은 나에게 다음 길을 열어주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모습을 그려보라. 보물찾기 같은 힌트가 곳곳에 숨겨져 있고, 결정적인 순간을 위한 실마리가 보이고, 서로를 위해 슬쩍 흔적을 남기고 발견하는 깨알 재미는 정말 신나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 고통을 감수하며 진심을 담아 위기의 순간, 힘겹게 하나하나 터뜨린 폭탄들은 생애 전체를 놓고 보면 폭죽뭉치이며 당신만의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탄생한다는 얘길 하고 싶었다.

올해도 마음고생 많았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회를 얻는 일만큼이나 잃는 일도 있을 거다. 100% 긍정 마인드를 다 동원해도 다 해낼 수는 없는 일도 곳곳에서 만날 테고, 힘이 부쳐 혼자 해내기 난망한 일들이 ‘거인’의 도움으로 기적같이 해결되기도 할 거다. 자, 홀가분한 마음으로 청소하고 정리하자. 켜켜이 쌓인 먼지, 기껏 한 꺼풀 벗겨내고는 ‘청소 다했다’ 뻐기지 말자. 계속 꿈을 꾸자. 꿈꾸는 모습 그대로 당신이 계속 변한다. 당신을 위해 예언을 하나 해보겠다. 머지않아 큰 길이 나거나 무언가 이뤄질 것이다. 그때, 마음껏 기뻐하고 감사하면 된다. 넉넉하다면 곁사람에게, 그리고 내게도 좀 나눠준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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