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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랑 Aug 12. 2023

미용실 원장님의 고민

전화 예약 VS 온라인 예약

몇 달 전, 집 근처에 새로운 미용실인 Z가 오픈했다. 덕분에 나는 3년 간의 미용실 유목민 생활을 마치게 되었다. 


3년 전 단골이었던 미용실은, 좋아하는 디자이너분이 그만두시면서 발길을 끊었다. 그 이후로 꽤 긴 시간을 만족스럽지 않은 커트를 받아왔다. '어딜 가도 마음에 들지 않다면 돈이라도 아끼자'고 생각한 뒤로는 만 원 이하의 남성커트 전문점도 자주 방문했다.


그러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하게 되었고, 주변의 미용실을 모두 방문해보았지만 이번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남성커트 가격이 13,000원(샴푸 미포함)인 A미용실을 선택하게 되었다.


A미용실을 세 번째 방문하던 날, 평소와는 달리 굉장히 급하게 머리를 잘라주신 탓인지 머리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달 동안 거울을 볼 때마다 신경이 쓰였고, 미용실을 옮기기로 마음먹은 차에 Z미용실이 오픈한 것이다.


샴푸 포함 14,000원으로 동네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에 놀라고, 원장님의 실력에 거듭 놀랐다. 3년 전, 매달 2만 원을 지불하며 받았던 커트보다 더 마음에 드는 스타일로 잘라주셨다. 


처음 머리를 자르고 온 날, 아내에게 강력 추천했고 아내 역시 미용실을 다녀온 뒤 굉장히 만족했다. 이제까지는 단골 디자이너분이 그만두면 미용실을 옮겼는데, Z미용실은 원장님이 혼자 운영하는 매장이라 망하지 않는 이상 옮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다음은 아내와 Z미용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정리한 것들이다.

    1)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을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실력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

    3) 돈이 안되는 남자 커트를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잘라주는 정성

    4) 눈을 감고 있는 고객에게는 말을 걸지 않는 세심함 등


사실 1번과 2번으로 이미 동네에서 손에 꼽히는 경쟁력을 갖춘 미용실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실을 입증하듯 Z미용실은 벌써부터 당일 예약이 불가하다. 기본 3일 정도는 미리 연락을 해야한다. 


경험상 이 동네의 다른 미용실들은 당일에도 예약없이 자를 수 있었다. 한번도 미리 예약한 적이 없다. 미용실 옆에 1,200세대의 새로운 단지가 입주를 시작해서 앞으로 예약이 더 힘들어질 듯하다.



Z미용실을 네 번째 방문하던 날, 이날은 내가 눈을 감지 않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원장님께서 먼저 말을 건네셨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던 중 원장님의 고민을 듣게 되었다.


'전화 예약을 유지 VS 온라인 예약 시스템으로 변경'


매장은 혼자 운영하는 상황에서 혼선을 막기 위해 전화 예약만을 사용하고 있는데, 몇몇 젊은 고객분이 온라인 예약 서비스를 왜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신 것이 고민의 시작이었다.


"주요 고객층 연령이 어떻게 되나요?"

"주로 40대 이상이 많으세요."

"그럼 저는 전화예약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머리를 자르고 2주가 지난 시점, 아침에 머리를 감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격이 주위에서 가장 저렴한데 실력은 가장 좋다면, 예약 방법이 어떻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람들은 질 좋은 물건을 가장 저렴하게 사기 위한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낸다. 즉, 자를 사람은 어떻게든 예약을 한다. 어른들께 온라인 예약 서비스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곳에서 머리를 자르고 싶은 사람들은 직접 배우든, 자식들에게 부탁을 하든 어떻게든 예약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화 예약 시스템을 고수할 것 같다. 이유는 이렇다.


젊은 사람들은 온라인 예약 서비스를 선호하지만, 어른들은 전화 예약을 선호한다. 미용실이 위치한 곳은 3~4인 가족이 많이 거주하는 주거밀집지역이다. 20~30대는 원하는 미용실을 찾아 시내까지 나가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40대 이상과 40대 이상이 데려오는 어린 자녀들이 주고객이다. 그럼 굳이 업무에 혼선이 오는 온라인 예약 서비스를 할 필요가 없다.


즉, 이미 경쟁력을 갖춘 원장님에게 이 고민은 시간낭비다. 그냥 운영하기 더 편한 것을 택하고 고객의 머리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


고객이 미용실로부터 받고자 하는 본질적인 것은 '마음에 드는 헤어스타일'이다. 그 다음이 '합당한 가격'이다. 사람에 따라 이 두개의 우선순위가 바뀔 수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예약 시스템' 때문에 미용실을 고르는 사람은 굉장히 적다는 것이다.


Z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오면 거울을 보는 한달 동안 기분이 좋다. 그러니 나는 미용실 예약을 할 때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나는 Z미용실을 예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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