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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랑 Aug 15. 2023

도둑맞은 우산

누구의 잘못일까?

얼마 전 점심시간, 선물 받은 우산을 식당에서 도둑맞았다.


아무런 로고도 박혀있지 않은, 튼튼한 고급 우산이라 나름 아끼는 우산이었다. 심지어 다섯 번도 채 사용하지 못했다.


살면서 우산을 도둑맞은 적은 두 번인데 첫 번째는 대학 시절 헬스장에서였다. 그때도 아끼는 장우산을 도둑맞아서 며칠을 마음 상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시절에는 훔쳐 간 도둑을 욕했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데 우산을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심지어 CCTV가 있는 로비의 우산꽂이에 꽂아뒀는데도 도둑을 맞으니 화가 많이 났다. 


식당에 우산꽂이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임시방편으로 계단에 우산을 늘어놓았고, 나 역시 군중심리를 따라 그렇게 던져두었다. ‘설마 가져가겠어?’라는 생각이 스쳤는데, 1시간 뒤에 현실이 됐다.


같이 식당을 방문한 직장 상사 두 분은 밥 먹는 자리까지 우산을 가져가셨다. 경험에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헬스장에서는 우산을 들고 다니기 어렵지만, 식당에서는 충분히 가능했다.


우리나라는 자전거와 우산은 밖에 두면 안 된다. 카페 테이블에 올려둔 휴대전화, 지갑, 노트북 등의 귀중품에는 K양심이 적용되지만 자전거와 우산은 예외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여전히 이해하지 어렵다.


지난 헬스장에서의 경험과는 달리, 이번에는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모든 리스크는 내가 대비해야 한다. 도둑이 가장 큰 잘못을 했지만 내 잘못도 있다. '여기 깨끗하고 튼튼한 우산이 있으니, 아무나 가져가시오'하고 방치해 둔 것은 나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다음 피해자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 사장님께 "사장님 누가 제 우산을 가져갔네요. CCTV 있는 곳에 우산꽂이 하나 만들어 주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죄송하다고 하시며 가게에 남는 우산 하나를 챙겨주셨다.


도둑맞은 우산이 튼튼한 우산이었지만 무겁다는 것이 단점이었는데, 사장님께서 챙겨주신 우산은 조금 작아도 가볍고 튼튼하다.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반복된다. 그 상황을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렸다.


그래도 리스크 대비는 잘하자. 도둑의 인성을 고칠 수는 없지만 내 행동을 고칠 수는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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