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속도를 내지 않기로 했다.
다른 나라에 길지 않은 여행을 다녀온 선배에게서 들은 얘기다.
거긴 정말 무질서해.
(사진은 픽사베이)
거기서 운전하다가 돌아버릴 거 같더라고. 무단횡단은 기본에다가 아무 데서나 막 끼어드니까. 근데 신기한 게 첫날은 그랬다가 둘째 날 되니까 다른 풍경이 보이는 거야.
아무도 소리를 안 질러. 내가 있는 3일 동안 사고 난 것도 못 봤어.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고,
그 안에 사람이 우선이고
가장 중하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야.
거기에선 사람들이 끼어들 걸 아니까 속도를 내지 않고, 남들이 그러면 언젠가는 자기도 그럴 수 있을 걸 아니까 고성을 지르거나 원망하지 않는 것 같아.
선배의 여행담을 들으며 또 다른 혼잡함을 떠올렸다. 서울로 장거리를 출퇴근하는 친구는 심하면 아침 출근길에만 교통사고를 세 번은 본다고 했다.
이 얘기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몇 년 전 들었던 이야기인데 생생한 걸 보면 당시의 내 상황과 겹쳐 보여 그랬던 것 같다.
생과 사가 바로 옆에 있었음을,
누구에게나 같은 24시간 가운데 내 시간은 어디에 있을까 싶었던 날들,
혼란한 머릿속을 빨고 널고 말려 차곡차곡 개켜두고 싶었던 순간 속에
'무질서 안의 질서'라는 말이 내 안의 답이라도 되는 듯이 오래 맴돌았다.
그 후로 몇 년은 정신없이 지냈다. 아들 둘의 엄마로 아이들을 키우고,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배우고 다치고 웃고 울며 성장했다.
'잘하고 있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떨어지는 체력을 주워 담으며 보냈는데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 까지 마음이 바닥을 기어 다녔다.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내와 며느리, 엄마라는 역할 외에 글 쓰는 사람으로, 강사로, 드라이플라워 작가로, 마켓 셀러로 하는 일도 늘어났다. 아이 기르며 경력단절을 끊고,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는 스스로가 기특했다.
집안일과 병행하며 하나둘 만들어 온 일들이 결과를 보이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힘든 걸까.
집은 어질러지고, 건강검진 결과지는 체크할 항목이 가득하고, 첫째 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이런 것들에 더해 결국 쉼 없는 매일에 지쳤다.
실은 지난 10월 말부터 2026년을 맞는 계획을 세웠다. 지금은 다 지웠다. 이제 나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래서 속도를 줄이기로 했다.
역할은 늘었는데, 나를 쉬게 하는 '질서'가 없었던 일상에서.
이제는 내 마음을 차곡차곡 개켜두는 '쉼'이라는 질서부터 만들기로 했다.
나를 다독이는 연습은, 그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