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해와 새해
아이 헤어컷을 하려고 간 미용실에서
먼저 의자에 앉아 외쳤다.
"저, 뭔가 하고 싶어요!"
"지금도 예쁜데, 굳이?"
"굳이요. 어떤 변화라도요."
원장님은 늘 나를 좋게 봐준다. 내가 뭘 하든 잘 어울린다고 말해준다.
식물을 좋아해 많이 기른다는 말만 했을 뿐인데도.
예술적인 분위기가 풍긴다고, 어떤 걸 해도 잘 소화한다고 엄지 척해주신다.
이번에는 굳이 헤어 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싶다 하니
무슨 일이 있냐 물으신다.
"저는 연말부터 지금까지 좀 힘든 시간을 보낸 거 같아요."
"왜 그랬을까? 00 엄마 뭐든 열심히 하는데."
"정말 애쓰면서 노력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고는 와인색으로 코팅을 하고, 펌을 하기로 했다.
펌을 말아두고 중화제를 하고 기다리는 사이,
원장님이 책장에서 책을 뒤적이면서 한 권을 건네주신다.
법정 잠언집, 류시화 엮음
책을 스르륵 넘겨 보는데
지금 나에게 해주는 말처럼 느껴진 이 장에서 멈췄다.
누가 물었다.
스님은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느냐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오늘을 살고 있을 뿐
미래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
바로 지금이지
그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다음 순간을, 내일 일을
누가 알 수 있는가.
학명 선사는 읊었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라.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라.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괜찮아. 잘했어. 나아질 거야.
그런 말보다 이 문장이 더 다정했다.
바로 지금이지 그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매년 10월이면 다이어리를 주문하고, 새해가 오기 전에 계획을 끝냈다.
그런데 올해는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해야 할 일을 찾는 대신
그저 차분한 마음이길 바란다.
우연히 선물 받은 책에서 마주한 글이
기대 못한 위안을 줬다.
펌이 고정되는 동안, 책을 보며 마음도 잠시 머물렀다.
새해는 달라진 게 없고, 하늘도 그대로인데
내가 '내일'에만 매달리느라 오늘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이제는 계획보다 먼저, 작은 기쁨을 하나씩 챙겨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