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뭔가 하고 싶어요!

묵은해와 새해

by Florasee 플로라씨

아이 헤어컷을 하려고 간 미용실에서

먼저 의자에 앉아 외쳤다.


"저, 뭔가 하고 싶어요!"

"지금도 예쁜데, 굳이?"

"굳이요. 어떤 변화라도요."


원장님은 늘 나를 좋게 봐준다. 내가 뭘 하든 잘 어울린다고 말해준다.

식물을 좋아해 많이 기른다는 말만 했을 뿐인데도.

예술적인 분위기가 풍긴다고, 어떤 걸 해도 잘 소화한다고 엄지 척해주신다.


이번에는 굳이 헤어 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싶다 하니

무슨 일이 있냐 물으신다.

"저는 연말부터 지금까지 좀 힘든 시간을 보낸 거 같아요."

"왜 그랬을까? 00 엄마 뭐든 열심히 하는데."

"정말 애쓰면서 노력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고는 와인색으로 코팅을 하고, 펌을 하기로 했다.

펌을 말아두고 중화제를 하고 기다리는 사이,

원장님이 책장에서 책을 뒤적이면서 한 권을 건네주신다.



원장님이 읽던 책이라고 선물해주신 책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법정 잠언집, 류시화 엮음


책을 스르륵 넘겨 보는데

지금 나에게 해주는 말처럼 느껴진 이 장에서 멈췄다.






묵은해와 새해


누가 물었다.

스님은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느냐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오늘을 살고 있을 뿐

미래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

바로 지금이지

그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다음 순간을, 내일 일을

누가 알 수 있는가.


학명 선사는 읊었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라.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라.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260128_플로라씨 (3).jpg 좋아하는 집 식탁에서 찍어봤다.



괜찮아. 잘했어. 나아질 거야.

그런 말보다 이 문장이 더 다정했다.


바로 지금이지 그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매년 10월이면 다이어리를 주문하고, 새해가 오기 전에 계획을 끝냈다.

그런데 올해는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해야 할 일을 찾는 대신

그저 차분한 마음이길 바란다.


우연히 선물 받은 책에서 마주한 글이

기대 못한 위안을 줬다.




펌이 고정되는 동안, 책을 보며 마음도 잠시 머물렀다.


새해는 달라진 게 없고, 하늘도 그대로인데

내가 '내일'에만 매달리느라 오늘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이제는 계획보다 먼저, 작은 기쁨을 하나씩 챙겨보기로 했다.



동네에서 문연지 오래된 작은 미용실에서 푸르게 자라는 해피트리



매거진의 이전글질서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