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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rasee 플로라씨 May 09. 2016

맑은 날. 기쁜 날.

아이러니하다. 감사한 날을 지나 깊이 생각나는 날이라니.

오늘이 맑은 날이어서 좋았다.

오늘이 정신없이 흘러가서 좋았다.

한 끼만 먹었는데 배가 고프지 않아 좋았다.

오늘은 내동생 생일이다.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저장해둔 걸까.

그냥 무심하게 이름으로 저장해둘걸.


엄마는 떡꼬치를 하나만 사주셨는데 늘 먼저 나보고 한 입 먹으라던 너 였다.


어렸을 때 아프던 니가 커서는 축구를 즐겨할 정도로 건강한 게 정말 좋았다. 언젠가는 경기하는 걸 보러가고 싶었다.


무뚝뚝하지만 솔직한 너는 내 페북도 안보는 척 하지만 구박하는 댓글을 달고, 모니터링도 해주는 게 나는 참 좋았다.


마냥 어린 것 같았는데 어느 새 대학엘 가고 대학원생이 되고는 나한테 술 한 잔을 말아주던 날, 그 날 술은 정말 달았다.


가족들이 모이면 고기에 칼집을 내고 간을 하는 손질에 구워주고 잘라주고 했던 니가 좋았다. 내게 해준 마지막 음식은 니가 즐겨먹던 알리오올리오였다.


나랑은 닮은 구석이 없을 줄 알았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먼저 아픈 게 똑같았고, 즐겨 쓰는 이티콘도 같았다는 걸 며칠전에 알았다.


직접 말하지는 못했지만

속깊고 훤칠한 니가

신경안쓰는 척 배려해주는 니가

차분하고 똑똑하게 공부도 잘했던 니가

개구리처럼 뭉툭한 손을 가진 니가

옷을 참 꼼꼼히 고르던 니가

뚱뚱한 나는 싫다던 니가

나는 정말 참 좋았다.


생일 축하해.

나는 니가 늘 자랑스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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