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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rasee 플로라씨 Jun 13. 2016

보도블럭 깔아봤냐?

나는 깔아봤다.

몰랐다. 내가 직접 보도블럭을 깔줄은.

집근처의 농장을 마련한 지 석 달이 되어간다.


엄마가 그랬다. 아빠가 퇴직하시고 우울증에 걸릴까봐 할 줄 모르는 농사를 짓자고 하셨다고. 아빠가 시간 보낼 곳을 만들어야 한다 생각하셨단다. 차를 타야하는 김포 대신 집에서 가까운 이 곳을 마련한 건 아빠다. 동생을 하늘로 보내고 나서 이제는 엄마에게 아니 우리 가족 모두에게 집과 머지않은 데에 마음둘 곳을 만들어야한다는 생각때문이었다셨다.

좋지 않은 흙임에도 샐러드 채소들은 잘 자라준다. 그저 자라주고 푸르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외발수레도 제대로 처음 몰아봤다.

몇 번 운전하는 동안 다행히 쓰러뜨리진 않았지만, 쉽진 않았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아직 혼자인 서로는 조카 누나 형 덕에 주말이 즐겁다. 매일 농장가지고 조를 정도니까.

밭농사일 할 때 쪼그려 앉을 때 쓰는 엉덩이받침을 등뒤로 메고 닌자거북이라 하질 않나, 물에 맞을까 머리에 쓰질 않나 정말 창의적이다. 녀석들.


엄마가 웃으신다. 그걸로 얼마나 좋은지. 눈물 찔끔.

푸석푸석 마른 흙 사이로 고개를 내민 싹들을 보고 있으면 배운다. 더 열심히 살아야지. 살아야지...

농장이 생기고는 갈 때 마다 바베큐 파티다. 냄새 걱정 따위 없고, 마치 칼로리 걱정도 날아가버리는 듯이.

이제는 몇 번 구워봤다고 제법 잘 구워내는 나다.

이렇게 풍성하게 먹고는 삽질을 하고 벽돌을 날랐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일부러 힘든 일을 찾았다. 잠이 잘 올까 싶어서. 그래봐야 계속 무거운 벽돌을 쉬지 않고 날랐던 레오에 비하면, 어제부터 농장일을 했던 형부에 비하면 쉬엄쉬엄 했다.


몇 번 손을 찧어가며 벽돌을 싣고 내리고 했더니 금새 진이 빠지더라.

아빠의 오랜 친구 내외가 오셨다. 땅을 고르고 다지는 일이 쉬운 게 아녔는데 순식간에 정리하셨다. 아빠께 여쭤보니 사장님이라신다. 아이쿠. 아빠 사장님을 이렇게 부려먹으면 어떻게 해요? 하니 그게 아빠의 능력이지. 웃으셨다.


오른쪽이 우리 아빠, 왼쪽이 아빠의 오랜 친구시다.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

나는 보도블럭 깔아봤다. 방에서 마루를 지나 바로 밖으로 가기 전 몇 평의 공간, 바닥을 다지고 블럭의 색을 맞춰서 끼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역시 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해봐야 알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더 남았을까?

나는 되도록 많은 일을 경험해보고, 그 일들을 해내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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