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욜란다 Jun 02. 2022

프롤로그

나는 솔로 고장난 벽시계 때를 놓친 아이

작은 이민교회에 예배드리러 다녔던 삼십대의 어느날 청년도 장년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서 목사님께서 서리집사직을 임명하셨다. 직분을 맡으면 교회일을 더 책임감있게 할 수 있을것 같은 마음에 청년에서 서리집사로 '쩜프' 하였는데 조근조근 막말하시던 장로님이 '처녀집사'라 하시며 축하의 메세지를 건내셨다. 그 말이 꼭 처녀무당 박수무당처럼 들렸다. 그 저주의 말은 지금까지 이어져 나는 아직도 처녀집사이다. 이러한 지금의 내 상황을 물건에 비유하자면 마치 내가 고장 난 시계가 된 것과도 같다. 찌그러진 짐 차 안에 구겨 넣은 동그랗고 크기만 큰 벽시계처럼 나의 시간도 허송세월로 지나가버린 고장 난 시계 말이다. 좁은 차 안에서 검정 쓰레기 봉지 안에 켜켜이 앉은 다른 짐들 사이에서 뒤 엉켜있는 우리집 고장 난 시계. 


"늘봄이는 마흔이 넘도록 결혼도 안 해서 늙은 년이라 했드만 욕했다고 집 나가서 지금은 과천서 옷가게 해. 똑같이 마흔 넘은 늙은 년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더구먼 싹 다  요새는 어디 절에 다닌다데. 그래 늙은 년들끼리 시집도 안 가고 뭐하고 댕기냥께 늙은 년 늙은 년 욕 좀 하지 말랐쌌데 , 아 늙었응께 늙은 년 허재. 아이고 나만 문제가 아니여, 여그 동네 터가 쎄서 그라나 쩌그 한의원집이랑 세보니께 우리 동에서 마흔 넘도록 결혼 안한 늙은것들이 여덟이나 되더랑께."


지난 2019년 가을 팬데믹 이전 고국 여행으로 옛 동네를 방문하였을 때의 일이다. 이미 동네 반 쪽이 재건축 지역으로 묶여 살던 집 근처도 가 볼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 언저리라도 한번 다시 가서 기억에 담고 싶어 옛 동네를 가보게 되었다. 아직도 동네를 지키고 계시는 통반장을 겸임하셨던 반장 아줌마를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만남에 그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엄마와 둘째이모 반장아줌마 그리고 나는 동네 새터민이 운영하는 밥집에 들어앉아 물냉면 비빔냉면 우거지 된장국과 갈비탕을 서로 나누어 먹으며 가족들의 안부를 묻던 참이었다.


"아줌마, 우리도 아직 다 못 갔어요."


"옴마야!"


반장 아줌마는 두 손을 얼굴에 모으고 고개를 숙이시고는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신다. 늘봄이년 때문에 속상해서 한 말인데 정말 우리도 아직 혼인을 하지 않고 있을 줄은 몰랐다시면서 내 일찍 과부가 되어 여자 혼자 책임지고 사는 게 어떤 건지 그년이 그걸 몰라 저러고 사는 게 속상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하셨다.


또 다음다음 날에는 엄마의 동창 영희 이모를 만났다. 영희 이모는 나와 동갑인 아무렇게나 결혼도 안 하고 사는 딸 반찬을 전해주러 마침 시내에 와 있던 중 이라시며 우리 가족이 묵고 있던 숙소에 방문을 하셨다. 시종일관 그 아무렇게나 결혼도 하지 않고 사는 딸 걱정을 하셨다.  그분들의 표현에 의하면 나는 '아무렇게나 결혼도 하지 않고 사는 늙은 년'이다. 갑자기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늙대와 함께 춤을'이 생각났다. 인디언식 작명법을 따른 이름이 제목인 영화였는데 나는 인디언의 작명법을 잘 모르지만 만약 내가 인디언이었으면 지금의 내 이름은 총 세 분의 아이디어가 결합된 '아무렇게나 결혼도 하지 않고 사는 늙은 처녀집사'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에 유학을 와서 전공을 세 번 바꿔가며 공부를 하고 이곳에서 정착하기까지 18년걸렸다. 정말 욕설같은 해를 넘기고 있다. 20대에 와서 30대를 학생으로 보내다 40대가 되었으니 참 길게도 이렇게 살았다. 자연스레 연예와 결혼보다는 내 공부와 직업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친구들이 여행 가고 연예할 때 나는 살기 위해 바빴다. 간간이 이성과 만남의 기회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내가 결혼을 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시간이 이렇게 갔는데 어쩌려고 그러냐 하는 어른들도 계셨고 얘를 여태 이렇게 두시면 어쩌시자는 것 입니까 주니임! 하시면서 내 손을 부여 잡고 대성통곡을 하셨던 교회 장로님도 계셨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DM으로 묻는 것은 그래도 양반이다. 성 정체성을 파고드는 질문을 받을때도 있었다. 정말 내가 무엇을 크게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을 해 본적이 여러 번이다.  



그렇다 나는 솔로, 처녀집사. 제때에 뭐를 못한 고장난 시계이다. '뭐 이렇게 사는것도 괜찮아요.' 인 척 하지면 꽤 안 괜찮은적이 더 많다. 팬데믹의 한 가운데에서 친구의 주선으로 어렵사리 잡은 소개팅 자리가 있었지만 서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대면 대면 하다 들어왔다. 그래도 다 늙어 눈만 높다는 소문이 날것이 두려워 마음에 드는 척을 하며 최선을 다 한 것을 마지막으로 정든 캘리포니아를 떠나 지난해에 은퇴자의 도시, 선샤인 시티 플로리다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6개월 전의 일이다.  21일간의 폭풍 노동을 통해 작은 차에 짐을 몽땅 때려 넣고 2,490마일을 달려 동쪽으로 다시 남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도시에 정착하게 되었다. 도착하여 짐 속에서 발견한 고장 난 벽시계를 보자마자 시기를 못 맞추고 멈춰버린 내 삶과도 닮았구나 생각했다.


처음부터 시계를 포기한 삶은 아니었다. 우선 건전지 두 개 중 하나만 바꿔 갈아 끼워 보았다. 아직도 미동이 없는 상태이다. 이번에는 AA 건전지 두 개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 째깍째깍 시계 소리가 나는지 안 나는지 움찔거리던 시곗바늘이 어느 틈에 멈추어 있었다. 아마도 너무 오래전에 벌크로 사 둔 건전지가 스스로 방전이 되어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Office Depot (사무실이나 집에 필요한 잡다구리가 파는 대형 미국의 창고 형 대형상점)에 가서 용량이 가장 적은 새 건전지를 구입하기로 했다. 기대감을 품고 시계 밥을 다시 갈아 끼웠지만 멈추고 고장 난 시계는 그대로였다. Marshalls (생활 용품과 옷 가방 신발 등을 싸게 파는 미국의 상점)에 가서 적당한 시계가 싸게 나 온 것이 있는지 둘러보기로 했다. 없는 시계를 구색 맞춰 구입하려고 다니는 모양새가 어떻게든 짝 맞추어 시집이라도 가 보려 했던 내 노력과 묘하게도 닮아 있었다.  


부모님이 인지증을 앓고 계시니 치매어르신용 벽시계를 걸고도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벽에 못을 박고 무엇을 걸지 말자 형제들과 약속했기에 거창한 구매는 뒤로 미루었다. 언니는 레이저 빔을 천장에 쏴 시간을 알려주는 전자시계에 탐을 냈다. 하지만 수년 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친구가 물려준 전자시계를 언니 스스로 버린 것이 생각났다. 좁은 집에서 정신 사납게 시뻘건 숫자가 수면을 방해한다는 이유였다. 대차게 버렸던 것을 회상하니 재구매가 망설여져서 이 또한 접었다. 뭐, 시간을 맞춰 살기 위한 노력을 아애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싶은 것다.                                                                                                                  


결국 게으른 완벽주의자들은 시계 없는 6개월을 살았다. 시계 놓는 때를 놓쳤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시계 없이 잘도 살아졌다. 전날 자정 이전에 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 6시 조금 넘어 눈이 저절로 떠졌다. 만약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자정이 넘어 새벽 1시 반 이후에 취침을 하게 되면 그 날 7시에서 7시 반에 알람 없이 기상을 한다. 어제는 낮에 너무 더워 몸보신용으로 들이킨 냉 믹스커피의 기운으로 어쩌다 새벽 4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침 10시에 일어났다. 내 리듬에는 평균이자 정상적인 시간인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산책을 나가게 될 경우 집 앞 근처 연못가를 한 바퀴 돌면 17분 정도가 걸리고 세 바퀴를 빠른 걸음으로 걸리면 1시간, 사진 찍고 음악 듣고 한눈팔다 보면 금새 해가 중천에 뜨는 8시 30분이 된다.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흐린 날이 아니면 하루가 다 지나간 것 같은 쨍쨍한 적도의 태양이 위상을 뽐내는 플로리다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간다.


아침 8시 30분의 구름


스마트 폰에 노트북도 있고 새로 살게 된 마을 길목에는 편종이란 것도 있어 30분과 1시간 간격을 두고 종소리를 내어 시간을 알려준다. 오래된 부엌의 스토브에 작은 전자시계도 있으므로 아주 원시의 삶은 아니다. 굳이 시계를 걸어두고 살지 않아도 살아지더라는 말이며 일어날 때 자야 할 때 먹어야 할 때를 빠짐없이 챙기며 때맞추어 잘 살고 있다. 대부분 나의 시간이 고장 난 시계 같은 인생인 줄 알았는데 시간을 쫒지 않았더니 오히려 나에게 중요한 때는 알아지더라 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인생의 때를 놓친 것 같은 여전한 솔로, 처녀 집사이지만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나는 나의 때를 살고 있다. 정금 같은 처녀집사로서의 이 때에 '나만의 때'를 추억하며 사람과 사건 시간과 감정을 소환하여 때를 쓰는 일을 시작 해 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