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욜란다 Jun 06. 2022

01 때를 알다

우리 민수 이야기

솔로 말고 또 다른 나의 정체성은 전직 대한민국 유치원 교사이다. 지금은 과감히 때려 치웠지만 당시 상당히 몸바쳐 일했으니 그냥 상위 1프로였다고 스스로를 높여 본다. 교사를 하며 한가지 잊을 수 없는 경험은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계획해서 실행하고 평가하는 경험이 누적이 되면 아이들은 시계를 보지 않아도 스스로 루틴을 만들어 일과를 운용해 나간다는 것 이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것은 아니다. 놀이에 지시를 많이 받았던 경험이 있거나 아직 환경이 낯설어 주변 관찰이 조금 더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개인 차에 따라 시간이 더 걸리거나 덜 걸릴 수는 있어도 결국에는 하고싶은 것을 스스로 찾고 계획해서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격게 되더라는 것이다.


민수의 경우가 그랬다. 입학 초기에는 엄마와 떨어져 지내느라 울면서 보낸 적응의 시간도 거쳐야 했으며 집에서의 생활과 원에서 함께 정한 규칙등을 몸에 익히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하루에 40분에서 1시간 실내 자유선택놀이를 하는 시간 만큼은 온 몸 다하여 놀이를 하였고 시계가 없어도 놀이의 시작과 끝을 스스로 알고 교사에게도 마무리를 알리는 어린이 였다.  


스폰지 블럭을 이용해 만들기를 하는 활동은 당시 민수가 깊이 몰입했던 놀이 중 하나였다. 민수는 모양이 일정하게 잡히지 않고 전시도 할 수 없는 빌로드 소재의 스폰지 블럭을 특히나 '애정'하며 작업하였다. 키높이 이상을 쌓을경우 이것이 무너져 다른 친구의 놀이를 방해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나만의 놀이를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작은 개인 매트도 필요함을 터득했다. 위로 높이 쌓으면 원하는 로봇을 쓰러지지 않게 만들 수 없으니 눕혀서 만들기로 했고 더 많은 블록을 구하기 위해 옆반과 놀잇감을 물물교환 해야 한다는 사실도 스스로 생각 해 내었다. 그리고 내가 즐겁게 좋아하는 활동은 친구들도 좋아하므로 순서를 정해 기다리거나 함께 협동하여 놀이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음을 배웠다. 또 스폰지 블럭은 다른 레고나 와플블록과는 다르게 잡힌 모양이 흐트러 지지 않게 오랜시간 전시할 수 없으니 완성 후 교사를 호출하여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역사를 남겨 달라는 부탁도 하기에 이르렀다.


민수가 좋아했던 스폰지 블럭


민수의 바쁜 일과는 다음과 같다. 차량을 이용해 등원하는 친구들과는 달리 엄마와 함께 퀵보드를 타고 등원을 한다. 신발장에서 오늘 놀이  기쁨으로 한번 껑충 뛰며 홉핑스텝으로 기대감을 표현하며 만나는 선생님들께 형식적인 배꼽 인사를 한다. 친구들이 우루루 몰려 들기  블록 영역으로 이동  워밍업으로 1 놀이를 시작한다. 이윽고 친구들이 삼삼 오오 모이고 이야기 나누기  자유 선택 놀이 시간이 시작된다. 오늘은  팔을 '니은'자로 하는   만한 로봇을 만들거라고 했다. (어제는 '기역'  이었다.) 거울에 가서 한참 포즈를 취하고 세모 사람 머리를  튼튼한 포즈의 로봇 만들기를 시작한다. "선생님 보세요, 팔이 이렇게 니은 하고있어요. 사진찍어 주세용." 정말 나날이 발전하는 민수의 로봇은 양쪽 팔과 다리가 이제 제법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원색의 블럭 패턴까지 일정한 모습으로 진화된 모습이다. 친구들도 잠시 민수의 분신과도 같은 로봇을 감상했고 내일은 어떤 변신을  것인지 궁금해 하기도 했다.


민수는 블록 놀이 이외에도 거북이 밥 주기 소리 동화 듣기, 연극관람 등을 마치고 어느덧 교사 곁에 와서 속삭인다. "선생님, 모두 제자리 해야될것 같은뎅. 우리가 음악 틀게해주세영." "어이쿠! 벌써 시간이!" 황급히 시계를 보면 정말 모두 제자리를 해야 할 시간이다. "민수, 시계를 볼 줄 아는거니? 어떻게 알았어! 진짜 벌써 모두제자리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구나. "



이런 민수에게도 위기가 닥쳤으니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아직 이름정도 뒤집어 쓰는 수준의 아들이 걱정된 민수 어머니가 아이에게 이제 그만 놀고 공부를 좀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미 엄마와 아들은 방과 후 집에서 공부에 대한 합의를 보았고 오늘부터 아니 이미 어제부터 민수는 스스로 집에서 고시 공부수준의 활동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유치원 에서도 길면 1시간 반 짧으면 40분을 책상앞에 앉아 A4용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따라 쓰고 Chicken Scratch를 남발 하기 시작했다. 우리반 아이들이 하루에 써야 할 이면지를 혼자 모두 사용했지만 민수 어머니는 아들의 결심과 실천을 마냥 기뻐 하셨다. 어제는 민수가 글쎄 아버지가 쓰려고 구입하신 컴퓨터 용지 한 묶음을 2시간 동안 꼬박 앉아 공부를 하는데 썼다는 이야기를 흐믓하게 전하셨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민수야! 많이 슬퍼 보이는구나. 공부하는것이 힘들면 이제 그만 하면 되었다. 어린이들은 아직 그렇게 까지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되. 어린들은 열심히 놀아야 해!"


머리를 긁적이며 고시공부를 중단 한 민수는 다시 자유선택놀이에 합류했지만 어쩐지 움직이지 않고 멀찍이 서서 친구들의 놀이만 지켜 볼 뿐이다.그렇게 즐거워 하며 열심히 놀이했던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다시 다가온다.


"선생님, 어떻게 노는지 생각이가 안나용. 공부만해서 생각이 딱딱해 졌엉"


작은 민수의 눈물에 깜짝 놀라 나도 울컥하여 안아주었다. 걱정말라고 금방 다시 생각날거라고 위로 해 주었다.


민수가 자신의 일상으로 복귀 하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20년 전의 일 이므로 나도 시간이 얼마나 지나서야 딱딱해 진 민수의 그 '생각이'가 다시 말랑말랑 해 졌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계를 볼 수 있기 전 까지 민수는 자신의 놀이에 몰입하면서도 시작해야 할 시간과 그만 두어야 할 때를 정확히 알아냈다.


우리 민수의 이야기 속에서 마음껏 펼칠  있는 준비된 환경과 자유  안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행복한 일을 찾아 스스로    , 나의 때를 알게   세상의 때도  맞추어 생활한다는 사실을   있었다. 아마도 인생을 살며 유치원 자유선택놀이 처럼 주어  나만의 시간과 자유는 점점  줄어  수도 있고 반대로 너무 많아 주체할  없게 되는 시점에서 막막함이 나를 공격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때를  아는 사람은 적어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남들보느라 허비하거나 이제 무얼하지 방황하는 노동은 면하게  것만은 확실한  이다. 민수의 이야기를 회상하며 나도 나의 '' 열심히 생각   보기로 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황금같이 귀한 나만의 자유를 조급하게 타인의 '' 맞추어 살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