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미국에서. 제대로 말하면 다시 캘리포니아에서.
꿈을 꾸는 시간과 공간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곳은 지금 여기 이곳이어 한다.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이 한국이었다면 나는 작가가 되려는 희망조차 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정제된 고운 글을 걸러서 만날 수 있는 지금. 두고두고 지켜보다 내가 선택한 좋은 문장만 생각에 담으며 글을 쓸 수 있는 이곳이 내 꿈을 품고 자라게 '내버려 둘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뜻밖의 능력. 내가 영어보다 한국어를 잘한다는 당연한 그리고 상대적인 능력을 쥐어 짜서 발견 해 내고는 '이거라도 좀 더 잘하게 만들 수 있겠다' 내친김에 글도 써 보자 하는 욕심까지 내게 된 것이다. 다시 풀어 말하면 꿈을 꾸고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은 내가 처한 환경의 영향이 크다는 간단한 말을 늘려 보았다. 서울 여행을 통해 나도 어쩌면 글을 쓰는 우아한 삶을 살 수도 있겠다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급하게 타고 내린 후 또다시 되풀이 되는 삶의 터전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다시 시작된 고된 노동과 이어가야만 하는 생계였다.
이것을 다 글로 써서 영화로 만든다면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도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장르는 당연히 공포 스릴러이며 감독은 며칠전 수상하신 박찬욱 감독님 정도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을 대 뇌어 글로 풀기에는 몸이 너무 고단했고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어제였다. 퇴근 후 몇 장의 책을 읽다 잠이 들거나 동영상 시청 중 지쳐 쓰러져 잠드는 일과가 반복되며 글쓰기와는 너무도 멀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다시 몸에는 독이 쌓이고 요요가 왔으며 오른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지며 저린 증상이 시작되었다. 또다시 삶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인가. 이 노릇은 언제 끝나나. 뭔가 희망을 잔뜩 품고 고국 방문의 여행 후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일터에서도 반복되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이어졌다. 경영진과의 갈등도 시작되었다. 제한된 노동력에만 의지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사장님의 경영방침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즈음 가족은 분리 조치가 내려지고 대접받는 가장의 왕좌에서 폭군 노릇을 하며 이빨 빠진 골룸이 되어가던 아빠는 격리되어 딴 집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가족의 두 집 살림을 유지하는데 경제적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까지 전 세계를 공격을 하고 나서니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 하는 못된 생각이 났다. 정말 그냥 살래야 살아질 수 없는, 매일이 사건의 연속인 역사적인 날들 위에 내가 있었다. 나에게도 이런 삶이 펼쳐지는구나. 영화나 드라마의 일이 아니구나. 여기가 끝일 줄 알았는데 더 바닥이 있다니 세상이 참 야속했다. 현실도 도망치고 싶은 허구의 세계이며 미래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가상이 되어 버렸다. 지금 여긴 어디이며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과 함께 이 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자연히 꿈에 대한 감각도 무뎌졌다. 뭐만 하려고 하면 어찌 매번 이럴까. 나는 망했구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무료 코로나검사 키트도 구할 수 없던 시절이어서 확실치는 않지만Shutdown 행정명령으로 집에만 았었는데도 아파 죽을 것 같이 온 가족이 돌아가며 앓다가 낫다가를 반복하던 어느 날 센터의 이숙 선생님께 또 연락이 왔다. 2020년 봄 즈음이다. 몇 개월 후 독서 모임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운영할 생각인데 함께 하겠냐 하시는 의사를 물으셨다. 나는 여전히 쉬는 화요일 오전으로 정했고 그렇게 나의 꿈을 향한 고리가 하나 또 연결되었다. 이민진 작가님이 쓴 [파친코]를 시작으로 할 것인데 차후에 읽을 나머지 책 list는 정리되는 대로 보내 주시기로 했고 우선은 [파친코]라는 소설부터 대여해 놓으라 하셨다. 안 그래도 글을 쓰려면 input이 있어야 하는데 독서량이 너무도 부족한 나에게 변화를 주고 싶었던 참에 독서모임은 뜻밖의 탈출구였다. 하지만 소설 읽기는 그다지 내키지가 않았다. 줄곧 자기 계발서만을 읽어온 탓에 소설은 읽기도 쓰기도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글을 쓰겠다는 사람답지 않게 장르별 문학에 대한 낯을 많이도 가린다 생각했다. 이렇게 까다로워서야 언제 죽기 전에 일기라도 시원하게 한 문장 쓸 수 있을까? 매번 생각만 가득 차 현실을 불평하는 나도 참 이상한 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함께 하는 것이니 의도적으로라도 읽어보겠다 솔직하게 말씀드렸던 것 같다. 모임은 이 주에 한 번씩 센터에서 지정하는 비밀 계정에서 만나 리더가 준 정해진 질문을 생각하며 주어진 챕터까지 독서를 한다. 만나기 일 주 전에는 이메일로 중간 점검 및 질문과 관련한 reference가 되는 article, 전 시간에 대한 노트 등을 받아 보았다. email의 성격이었지만 이주일에 한 번씩 제공되는 Newsletter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이 모임의 Note를 남겨두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내가 해 보자 생각했다. Target독자는 나와 리더 이숙 선생님 포함 총 네 명의 멤버로 정해 (몇 주 후 한 분이 더 늘어 이후부터는 다섯 명) 매번 우리의 모임을 글로 적어보기로 하였다. 내가 쓴 글을 email로 선생님께 보내면 선생님께서 읽어보시고 공지사항과 함께 다른 멤버에게 전달해 주시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이런 것을 써도 되나 싶었는데 어차피 내 독서와 작가 수업에 대한 기록이며 제한적이지만 선택된, 목적을 같이하는 분명한 독자가 확보된 글 쓰기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책과 관련한 경험을 옮겨본 글쓰기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피드백을 받은 최초의 작품인 것이다. 메일은 희린이가 만들어 준 비공개 카페에도 정리해서 올려두고 네이버 블로그도 개설해서 글쓰기를 시작하며 독서 클럽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간단한 메모와 풀어서 쓰기, 그리고 경험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구체적 독자를 둔 글쓰기가 시작된 것이다.
다시 미국에서,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계속 멈춰있을 것만 같았던 내 꿈이 제자리걸음처럼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독서 클럽에 노트가 쌓이면서 이숙 선생님께서는 이것을 묶어 지역 소식지에 칼럼으로 내 보자 원고를 보내달라 말씀하셔서 그동안 쓴 노트를 뭉쳐 선생님께 메일을 드리기도 했고 중앙일보에 투고해 보라는 제의도 해 주셨다. 그때도 그 이전에도 누가 무엇을 제안하거나 할 때 선뜻 생각해 보겠다 해 보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고 일단 한발 물러서는 버릇이 있었다. 마음속 의심과 함께. 내가? 내가 그걸 어떻게 하지? 나는 못 할 거야. 아, 못하겠다 못하겠다 하니 하기 싫군. 그것 봐 원래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어. 하며 말이다.
그때 그 자리에서 스케줄을 무리해 가면서 독서 클럽을 계속해 갔다면 또 신문에 독서 클럽에 대한 칼럼을 쓰며 글쓰기를 계속해 갔다면 일상에서 오는 욕구불만과 터져 나오는 불평등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뭔가 계속 지금까지 글을 쓸 막강한 힘을 기를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행정명령이 풀어지며 식당이 다시 전면 오픈을 하게 되고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바빠지게 되었다. Dining에 손님을 받지 못하는 것을 메꾸기 위해 캐더링 서비스를 시작했고 건물주까지 합세해 지역 Homeless들을 위한 도시락 기부를 시작하며 오전 시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손님도 받으며 캐더링까지 해야 하는데 늘어난 배달 주문도 감당해야 했고 인원은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쉬는 날도 5분 대기조가 되어갔다. 바쁜 이민 생활에 모두들 어렵게 조절한 시간일 텐데 나 때문에 모임 시간을 변경하기는 싫었고 한발 도망쳐서 독서모임을 안 해도 되는 이유를 마구 만들었다. 이번 시즌에 읽을 책들이 무더기로 지금 막 배송되었는게 결국 [파친코]한 권을 3개월에 걸쳐 읽고는 처음 회원이 된 모임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덩달아 글쓰기도 예정 없는 방학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