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by KTDsign_studio
글 쓰는 욜란다, 꿈이 먼저 데뷔를 하다.
정여울 님의 에세이 [끝까지 쓰는 용기]에서 작가님이 서평을 통해 데뷔를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가 데뷔란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거나 등단을 한 것이라 말하지 않고 '원고료를 받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라는 것을 말한다'고 덧붙였다 (p155.) 이상하게 총 300페이지에 달하는 책 내용 중 유독 이 부분에 대한 기억이 또렷이 남았다. 아마도 부러운 마음 때문이었겠다. 꿈이 나를 배고프게 할까 봐 심장이 뛰던 중 이었으니 내 글이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에서 비롯 된 것이다. 내가 등단을 하고 책을 출간하면 그것을 사람들이 돈 주고 사는 상상을 하며 글 쓰는 욜란다는 오늘도 작가 데뷔를 마치 아이돌 데뷔 첫 음악방송의 무대 뒤 떨림처럼 기다리는 중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해'라고 스스로 다짐하였지만 또 짐을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에 ebook만을 고집하다가 브런치 작가 승인 후 나에 대한 선물로 몇 권의 종이책을 주문해 두었다. 그 중 조정래 작가님의 [태백산맥]은 마음의 숙제처럼 읽어야지 언젠가 읽어야지 했던 것이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무슨 고래심줄 쇠심줄 고집으로 32년이나 읽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비로소 책을 주문하게 되었다. 바로 권여선 작가님의 에세이 [오늘은 뭐 먹지?]를 읽고 난 이후의 확실한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벌교 꼬막을 묘사하는 부분과 한국의 정서가 물씬 묻어나는 '다종 다기'한 우리말의 매력에 흠뻑 빠져 여러 권의 책 중 [태백산맥]도 주문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 질에 10권인데 일단 딱 1권만 주문했다. 읽고 싶은 책이 참 많은데 [태백산맥]에 예산을 몽땅 투자할 돈이 없었다.
그 부분이 너무 슬펐다. 일을 하고 돈을 벌 때는 책 읽을 시간이 없고 본격적으로 읽고 쓰는 시간이 주어지자 이제는 책에 돈을 지불하는데 지갑이 열리지 않았다. 요즘 들어 계간지와 신문 등에 연재된 대하소설을 가위로 오려 책을 만들던 여중고 동창이 생각났다. 친구는 노트에 연재소설을 오려 풀칠을 하며 전집을 만들겠다 궁상을 떠는 모습을 당시 대학생이던 언니에게 들키게 되었고 이를 불쌍히 여긴 언니는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책 전권을 선물해 주었다. 그 소식을 들은 친구의 아버지께서도 지원을 해 주셔서 그녀의 서가에는 이미 [토지] [태백산맥] [아리랑] 등의 대하소설이 빼곡했다. 갑자기 그 이야기가 생각나며 나도 누가 태백산맥을 좀 사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차마 아까워 읽지 못하고 있던 제1권의 표지만 몇 개월째 만지작 거리던 중이었다.
시간을 쪼개 습작을 하고 그것을 행운의 편지처럼 몇몇 지인에게만 수줍게 메시지로 발송하면서도 한참 육아와 일에 바쁜 친구들의 일상에 한가로운 내 글이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죄책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진짜 행운의 편지와 내 글이 다른 점은 그것을 일곱 번 퍼트리지 않아도 저주받지 않는 데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괜찮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나의 행운의 편지는 놀랍게도 나에게 저주도 더 큰 죄책감도 아닌 행운의 선물을 안겨 주었다.
글을 읽은 친구로부터의 따뜻한 메시지와 함께 꿈 지원금을 받게 된 것이다. 아직 미천한 내 글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품고 키우려는 내 꿈에 대한 후원을 받게 된 것이다. 정여울 님의 말을 빌리면 내 꿈이 원고료를 받았으니 꿈의 데뷔전을 치른 샘이다.
아침 산책 후 마트에 들러 집으로 돌아오며 어디 눈먼 [태백산맥]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나 손가락을 빨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딱 맞게 전집 9권을 주문 배송할 수 있는 만큼의 금액을 후원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후원금으로 또 한 권, 은희경 작가님의 [새의 선물]도 주문할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에게 자세한 내막을 문자로 모조리 말하지 못해서 이 글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할 작정이다. 다급한 마음에 전화 통화로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전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는 너무 놀라 생각지 못했다. 대신 내가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을 친구의 마음을 통해 이루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친구 은혜가 주었다고 생각하니 오늘 아침에 본 쏟아져 내릴듯한 구름만큼이나 놀라웠다.
동시에 삶은 크고 작은 놀라움에 반응하는 놀람 교향곡 같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했다. 놀라움이 다른 감정을 만져 분노도 되고 기쁨과 감동일 수도 있으며 고통스러움 일수도 있지만 저마다 빨리 혹은 늦게 모든 놀라움에 기꺼이 반응한다. 오늘의 놀라움은 정말 환희, 절대 기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것을 표현해 내는 내 언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느끼는 지금은 다소 절망이지만 오늘의 놀라움이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의 내 삶에 그리고 세상에 어떤 교향곡을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그리고 그 하모니는 결코 스스로 낼 수 없음도 알게 되었다. 오늘의 기적 같은 놀라움이 내가 만든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2022년 8월 25일 목요일 ⎾꿈의 데뷔⏌에 부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