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욜란다 Jun 05. 2023

13 꿈꾸는 고통

세번째 백수. "왜"라는 약.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작가의 꿈을 야심차게 펴보려는 미래의 나에게 줄 글 선물을 위해 쓰기 시작했다. 처음 브런치 블랫폼을 통해 세상에 나를 알리고 한권의 책이 나올때까지의 감동을 기대하며 꿈의 서랍을 열어 내 글이 세상에 나가는 상상을 했고, 상상만으로도 벅찬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나의 영혼은 점점 지쳐 갔고 열정도 빠르게 사그라 들었다. 수입없이 손가락을 빨며 글을쓰는 내 모습을 마주 하는것이 고통스러웠다. 내가 취업을 하는것 보다 밖에나가서 아무나 만나 결혼을 하는것이 더욱 빠르겠다는 미친 생각까지 들며 3개월은 일기조차 쓸 수 없었다. 나는 일과 토끼 두마리를 모두 잡을 수 없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니 일이던지 토끼몰이던지 글쓰기와 관련이 있는 것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놀랍게도 아주 최근의 일이다. 글을 읽고 쓰며 문장을 생각 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주어지는 꿀직장,  꿀까지는 못 빨더라도 고소한 누릉지 차나 그럭 저럭 버틸 수 있는 스테비아 정도면 아주 괜찮을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 하자면 2023년 1월 25일 현재 3개의 서로 다른 직업군을 정하여 5군데 지원을 하였고 그 중 3군데 면접을 보았으며 3군데 중 두군데 최종 면접까지 갔으나 아직 어느곳 에서도 Offer letter를 못받은 실로 분위기가 쎄한 상태이다. 직군이 다르다 보니 한 군데 몇십개씩 원서를 쓸 수 없었고 Private과 State Goverment Job에 지원 하기 위한 이력서 양식도 다르니 조각난 경력을 Tayloring 하는것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 되었다. 늘상 쫒아다니는 핑계들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에 또아리를 틀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원하는 곳에서 Job Opening이 날 때 까지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가 단거리 달리기를 그렇게 네번 하니 3개월이 흘렀고 해가 바뀌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지난 3개월 간 글 읽기는 조금 하였지만 도무지 무엇을 쓸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으니 왠지 취준생인 나에대한 배신같기도 하여 얼른 취업을 해서 또 나의 자랑스런 취업 일기를 작가인 나에게 글로 다시 들려줄 다짐 비슷한것만 틈틈이 다져 왔다. 


 문제는 내가 무엇을 하기로 결정 하였다면 '왜'라는 질문은 종합 비타민 먹듯 계속 해 주어야 했는데 그 왜가 자꾸 빠지고 어떻게만 외쳐댔으니 고통이 따랐다. 종합비타민이라는 것은 먹어도 안먹어도 표가나지 않지만 몸에는 유익하니 약을 끊으면 또 몸 여기저기가 서서히 무너지는것 처럼 내면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왜라는 처방도 없으니 나에게 몰두할 시간에 누군가에게 계속 관심을 갖고 세상과 비교하면서 현실의 나도 꿈꾸는 나도 점점 지쳐 갔다. 어떻게 하면 무엇이 될까 하며 달려 온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니 '왜' 해야 하냐는 질문을 너무도 하지 않았었구나. 그래서 지금 내가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병 걸린것 처럼 조급증에 아직 되지도 않은 작가로서의 미래가 걱정이 되어 갑자기 가슴이 뛰기도 하는 것이 '나에게도 드디어 공황장애가 온 것일까' 싶다가도 좋은 책을 읽거나 머리에서 번뜩이는 문장이 떠오르면 또 다른 느낌으로 가슴이 뛰었다. 이도 저도 모두 다음 날에는 이불킥인 상황이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은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믿고 전진하려고 노력 했었다. 그러나. 그러나, 내 연약한 일상을 위한 변명을 덧붙이면 마치 빨리, 그리고  안전하게 도착 할 줄 알고 승차한 모범택시 안에서 컨트롤이 되지 않는 메타기의 돈 올라가는 숫자를 바라보는 승객이 된 심정이라고 묘사하고 싶다. 주머니에는 한 5만원 들어있는데 요금은 이미 3만원이 넘어갔고 내려서 밥도 먹고 물도 마셔야 하는데 어디서든 Stop을 외치며 택시에서 뛰어 내려야 할지도 모르는 조급한 마음이 지금의 나 이다.  돈 나가는 소리 없는 총성에 무의식까지 요동치는 이 순간에도 한파에 히터를 조금 틀었다고 이번달 전기료가 더블로 차지가 된 전기 회사의 이메일에 전화기 든 손을 벌벌 떨었다. 백수의 상황이 고통스러웠다. 


당장 나가 구슬이라도 끼워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속으로 외쳤다. 제발 내가 혼자가 아니기를 나와같은 이가 전세계에 한 100명쯤은 있기를. 아닌척 했지만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글 쓰기로 인한 1년 동안의 경제적 책임은 빈 통장과 함께 고스란히 내 몫이 되어 있었다. 기를 쓰며 준비했던 브런치에도 '벌써 150일째 작가님의글이 올라오지 않고 있어요. 작가님의 글을 보여주세요.'라며  AI가 섭섭한 마음으로 메세지도 보내왔다. 경제적 책임도 완수하며 내가 나를 위로하고 이해 해야 할 순간이 온 것이다. 어느것 하나는 또 포기 해야 하나 싶은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지금이 시월이니까, 십 일월, 십 이월.일월 ..'


손가락을 수시로 꼽아보며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나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Block Time, 3개월을 주고 일단은 창작 활동에서 노동의 영역으로 생활 패턴을 전환하였다. 코코의 캘리포니아 Job Coordinator로 부터 온 메일 한 통으로 나는 작가에서 곧바로 취준생이 되었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는데 몸무게가 갑자기 빠지며 입술이 하얗게 갈라지더니 바짝바짝 마르고 책상 위와 방바닦이 온갖 서류로 뒤 덮여졌다. Federal Resume의 양식에 따라 이력서를 작성하니 11pt로 7에서 8장이 나왔다. 그것도 줄여서 그만큼의 양이 나온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는 영주권자이며 Federal Job에 Apply할 수도 없는데 그냥 한번 도전 해 보는 것이었다. 생각 해 보니 늘 그래왔다. 되지 못하는 것을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했댔다가 스스로를 망신준 숱한 시간들이 생각났다. 혹시 작가의 꿈도 되지 못할 도전이었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여기서 멈추어야 할것 같았다. 뭐라도 될것을 공략하자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고 이 새로운 곳에서 내가 지원할 수 있는 분야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한국어로 글 쓰기를 다짐 하며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글로 생계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병행하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걱정 근심에 뜬 눈으로 밤을세웠다. 경력 단절 여자, 은퇴자, 산후 복직녀 등의 심정을 공감 하는 차원을 너머 거의 체험하는 중에 있었다. 이대로 무엇을 선택해 버리면 글쓰기와는 영영 멀어질텐데 그 생각이 날때마다가 나에게는 고통이었다. 


다시 '왜?'라는 약을 처방해야 할 때가 온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지금의 고통은 완화될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왕에 내가 택한 세번째 백수이지만 통증없이 열매 맺고싶다는 도둑놈의 심보가 올라왔다. 그것이 더 아파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12 꿈의 데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