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인 듯 소설이 아닌 듯

사랑스러운 영자 씨

by 정민유

그녀를 처음 만나기 전

난 좀 뭔지 모를 부담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나보다 연장자를 만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60대 후반의 영자 씨가 썩 편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담실에 들어서는 그녀도 잔뜩 긴장하며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이 사람을 믿어도 되나?' 하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첫마디는

" 전 오늘 할 말이 없어요. 아무 말도 안 할 거예요"

그 말에 난 살짝 당황이 되었다. '정말 아무 말도 안 하신다면 50분 동안 어떡해야 하지?'


하지만

" 아무 말 안 하고 싶으시구나..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럼 뭘 해야 할까요? "라는 나의 말에 봇물 터지듯 쉴 새 없이 그녀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이미 1시간을 넘어 버렸다.

어린 시절의 엄마의 무관심, 형제들에게 받았던 상처, 결혼 이후의 아픔등..

그동안 쌓인 한이 너무 많으신 분이셨다.


다음 회기를 기약하면서 그녀의 말을 가까스로 끊으며 난 웃음이 나왔다.

" 할 말이 하나도 없으시다더니 말씀을 너무 잘하시네요"라는 나의 말에

"그러게요 오늘 아무 말도 안 하려고 생각하고 왔는데 선생님을 보니 그냥 나도 모르게 막 말을 하게 되네요" 라며 빙그레 웃으셨다.


그게 영자 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회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나도 모르게 영자 씨의 입담에 빠져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영자 씨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는 유머러스하면서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도 있으셨고 솔직하고 거침없었다.


가족 안에서 소외감을 느끼셔서 그 외로움을 분노로 표출하거나 아니면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갈등이 심했었다.

하지만 10회기 이상 상담이 진행되면서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절제를 할 수 있게 되고 감사의 마음도 표현하시게 되셨다.

" 내가 그런 말 하는 거 오글거려서 싫어하지만 선생님 말은 잘 듣잖아요"

내 앞에선 말 잘 듣는 초등학생이 되신다.


어제는 허리병이 있는 내가 아파하는 기색을 보이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시더니 방석을 가져오셔서 내 의자 등 뒤에 대시며

"선생님 이렇게 등뒤에 대고 허리를 쭉 피고 앉으셔야 해요"

"선생님은 상담하면서 안 좋은 에너지를 계속 받으셔서 더 아프신 거예요. 그걸 그때그때 털어내셔야 해요"

그녀가 날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게 느껴졌다.

그건 사랑이었다.


그리고 다리를 돌리며 운동법을 알려주시고 아픈 사람이 붙들고 기도해야 할 성경 구절을 알려주시며 "이 말씀 붙잡고 매일 기도하세요" 하시더니 상담이 끝나고 나가시다가 나를 붙잡고 기어이 약국으로 향하셨다.

가서 한방 파스와 뿌리는 파스를 사주시면서

"매일 밤에 뜨거운 샤워기로 허리에 뜨거운 물로 찜질을 하세요"


그 순간 그녀의 따뜻함에 감동을 받아 가슴이 뭉클해졌다.

" 저 눈물이 쪼금 나왔어요" 라며 눈물을 닦는 나를 보며 그녀가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이런 느낌 나에겐 익숙지 않다.

신정에 친정에 갔을 때도 식구 중 어느 누구도 내가 허리 아파할 때 이런 반응을 해 준 사람은 없었다.

예상치 못하게 어제저녁 난 사랑의 선물을 한 아름 받고 따뜻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어젯밤 오래도록 가슴에 따뜻한 온기가 남아서 행복하게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내일 아침에 이 일을 일기로 써야지..' 하면서..


#글루틴 4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