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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Feb 15. 2023

50대 후반에 첫 주방알바

나답지 않은 경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사장님께 인사를 한다.

앞치마를 입는다.

행주로 테이블을 닦는다.

밥이 다 되면 저어서 큰 밥솥에 모은다.

그릇을 제자리에 잘 놓는다.

주문이 들어온다. 

국그릇에 밥을 뜬다. 

그 위에 닭고기와 양지, 아롱사태, 썬파를 얹는다.

사장님이 끓인 육수를 붓는다. 

" 양지닭곰탕 나왔습니다"라고 말한다.

삶은 닭의 살을 발라서 얇게 찢는다.

3일에 한번 깍두기를 담근다.

설거지 기계에서 그릇을 꺼내 제자리에 놓는다.




요즘 평일 아침 10시 반부터 1시까지 주방알바를 한다.  9월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5 달반이 되었다.

50년이 훌쩍 넘게 살면서 처음 해보는 일이다. 대학교 때도 그 흔한 카페에서 서빙하는 알바도 해본 적이 없다. 말하자면 참 곱게 살았다. 육체노동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주방알바, 처음엔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원들 점심시간 1시간은 전투를 방불케 했다. 남편과 손발이 착착 맞아서 돌아가지 않으면 밀어닥치는 손님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많을 때는 테이블이 3번 돌아가기도 하니까..

" 여기 깍두기 더 주세요"

" 밥 한 공기 추가요"

"주차등록 좀 해주세요"


처음 주방일을 하는 내 모습에 남편은 속이 터질 지경이었나 보다.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었지만 한 번씩 짜증을 냈다.

'내가 허리가 아픈데도 이렇게 도와주고 있는데..' 하며 나도 부아가 치밀었다.

사실 2시간 반정도 정신없이 일을 하고 나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원래도 아픈 허리병이 더 도졌다.

직원들 다 나가고 남편 혼자 주방일을 도맡아서 하는 걸 보니 당연히 도와주는 게 맞긴 하다. 그런데 남편이 날 일 못한다고 구박하고 밥 뜨고 있으면

" 그릇 빨리 치워야지" 그릇 치우고 있으면 "깍두기 떠야지"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

"내가 지금 놀고 있어? 열심히 하고 있잖아"

손님이 있는데도 내 목소리가 커졌다.

나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앞치마를 벗고 뛰쳐나왔다. 뛰쳐나가는 내 뒷모습을 남편은 망연자실 쳐다보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니 완연한 가을이었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단풍놀이 한번 못 가고 지하에 박혀서 아웅다웅하고 있었구나...

눈물이 찔끔 났다. 어디론가 혼자 떠나고 싶었다.

둘 다 그 지하에서 몇 달 동안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결국 그날 여행을 떠났다.

( 그 사연이 궁금하신 분은 '부부싸움, 피터지게 싸우다 여행간 사연' 을 읽어보세요)


하지만 누구 탓을 할 수가 없다.

"김치말이국수 용산에서 해볼까?"란 말을 처음 꺼낸 건 나였으니까... 이렇게 식당을 차리게 된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까... 어차피 올 5월에 2년 계약이 만기 될 때까지는 운영을 해야 한다.

힘들더라도 인내하며 약속된 기간까지 식당을 하는 것.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완수하는 것은 나에겐 힘든 일이다.


사실 주방장이 그만두었을 때 남편에게 그냥 가게를 접자고 했었다. 남은 월세는 어쩌고 가게를 접는단 말인가? 참 대책 없다. 하지만 남편은 잠도 못 자며 식당을 운영할 방법을 머리를 짜내며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래서 혼자서 운영하면서 처음으로 수입을 냈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해결할 방법을 모색해 보는 것이야말로 나답지 않은 경험이란 생각이 이 글을 쓰면서 들었다.


또 내 안에 있는 '싸모님 기질을 빼내는 과정'을 하고 있다. 주방알바 5개월 만에 많이 빠졌다고 느낀다.

" 엄마는 가만히 있어도 있어 보이잖아"

막내딸이 어릴 때 했던 말이다.

마음고생은 누구보다 많이 하고 살아왔지만 크게 몸고생은 해본 적 없이 살았기에 그 흔적이 외모에서 풍기나 보다.

우아하고 고상한 이미지에서 탈피하는 것.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배어있는...


5월 이후의 삶에 대한 기대가 크다. 힘들었던 만큼 더 자유로워진 삶에 감사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주어진 행복을 누리며 살 것 같다. 그동안 못 다닌 여행도 많이 다니고 마음껏 글도 쓰고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리라. 함께 식당을 운영해 본 경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나중에 더 나이 들어서 할 거 없으면 시골에서 조그맣게 국밥집 해도 될 것 같아" 하며 남편이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속으로는 아니야. 괜찮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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