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유 Mar 01. 2023

한 건물에 가게를 3개나?

우리 부부의 무모한 도전


꿈의 심리상담카페는 오픈한 지 1년 7개월 만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무모한 도전은 맞았다.

같은 건물에 스타벅스 리저브드가 있어서 이것만으로도 카페를 열기엔 부적당한 입지였다.

게다가 지하 1층, 2층, 3층에 개인카페가 3개나 더 있었으니...

하물며 우리 카페 위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상가 2층의 아주 구석진 곳이었다.


하지만 어디서 나오는 근자감인지 난 카페를 오픈하면  당연히 손님들이 몰려올 거라 예상했다.

일단 스페셜티 원두로 만든 우리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 

진한 한약 같은  고소한 커피를 아침에 한잔 마시면 몸이 확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얀 벽에 엔틱 하면서 빈티지한 분위기의 가구 하나하나, 럭셔리한 조명, 넓은 창으로 용산역이 보이는  뷰등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쿼렌시아 같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건 나만의 환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심리상담을 하니 그냥 카페만 하는 것보다 위험부담이 적을 거라는 생각이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픈 2개월 만에 코로나19가 터지고 심지어는 거리 두기로 매장에서 음료를 마시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하루에 커피 1잔만 팔린 적도 있다.


꿈에 부풀어 시작했던 우리는 차츰차츰 지쳐갔다.

서로 눈치만 보다가 다투는 일도 많아졌다.

심리상담을 열심히 해서 월세와 관리비를 내면 거의 남는 게 없는 상황이었다.

가게를 내놨지만 코로나 상황에 선뜻 가게를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한의원을 하겠다는 예쁜 한의사선생님이 나타났을 때 뛸 듯이 기뻤다. 게다가 권리금까지...

일단 상담실은 3층의 작은 공간을 계약해서 리오픈하기로 했다.

그리고 또 우리 부부의 무모한 도전은 시작되었다.

지하에 김치말이국수 전문점과 코인빨래방을 동시에 오픈하기로 한 것이다.




김치말이국수 전문점을 하게 된 사연은 이전에 글을 쓴 적이 있다. 그즈음 같은 오피스텔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이불빨래를 할 셀프빨래방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우리는 의미심장하게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 그럼 우리가 하자!!"

" 좋아. 무인이니 크게 손 갈 일도 없을 거야"

"  맞아. 맞아"


그렇게 의기투합한 우리 부부는 일사천리로 빨래방 창업을 추진했다.

"전국에서 제일 예쁜 빨래방을 만들자"

그래서 카페 인테리어를 했던 동생에게 빨래방 인테리어도 부탁을 했다.


그렇게 해서 같은 건물에서 3개의 매장을 운영하게 된 거다.

그렇게 3개의 매장을 운영한 지 6월이면 2년이 되어온다. 과연 성적표는 어땠을까?

빨래방 업체에서 계약당시 말했던 최소 한 달에 200만 원 수입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고 수시로 오는 문의 전화에, 주차등록해 달라는 문자,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기계청소와 수시로 먼지제거와 바닥청소등 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과부하가 올 지경이었다.


국숫집도 주방장과 알바를 두고 운영한 1년 넘는 시간 동안 수입은 거의 제로였고 하물며 세금을 내야 하는 은 적자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상담실은 꾸준히 내담자분들이 오셔서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최근에 한꺼번에 3개 매장을 오픈한 이야기를 들은 분으로부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 어떻게 그렇게 용감하게 도전하실 수 있으셨어요?"

"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너무 무모하게 시작한 거죠"

"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무모하게 도전할 수 있는 거죠? 전 그 무모함이 부럽습니다. 전 생각이 많아서 아무것도 시작 못하고 있거든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탁 맞는 느낌이었다.

' 나의 무모함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구나...'

최근 들어 경영이 힘들 때마다 나의 이 무모함을 자책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무모함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나에겐 머리를 탁 치게 만드는 통찰이었다.


처음 상담카페를 시작하고 자영업자가 된 지 이제 3년이 넘었다.

가장 힘든 코로나 시국을 버텨냈다.

가장 힘든 시기를 겪어냈기에 '자영업자근육'이 생기게 되었다.

자영업자로의 삶도 이젠 익숙해지고 많은 경험도 쌓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뭐든 무모하게 시작하진 않을 듯하다.

그래도 우리의 이 무모함 덕분에 얻은 경험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경험이다.

이젠 우리의 이 무모함도 사랑하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50대 후반에 첫 주방알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