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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Mar 03. 2023

역시 음식맛의 기본은 밥맛이야

인생밥을 먹은 날


4개월 만의 여행.

"계획 없이 떠나는 게 우리 스타일이지"

우린 P 성향대로 숙소 이외에 어떤 계획도 잡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날씨가 잔뜩 흐렸다.

흐린 날씨 탓에 기분이 업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감정형의 우리는 서로 날씨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햇볕이 쨍하진 않더라도 흐리지는 않기를 그토록 기대했건만...


찌뿌둥한 날씨처럼 뿌연 기분을 하고 양평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그래도 옆에 한강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강의 ㄱ자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왜 한강이 안 보이지?"

"그러게. 네비가 빠른 길로 안내해주나 보다"

"그런가 보네"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이미 날씨부터 받쳐주지 않은 이번 여행에 큰 기대는 없었기에 그리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우리의 트레이드 마크인 " 우와 우와 우와" 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촉 좋은 우리 부부에게 느껴졌기에...




숙소에 거의 도착할 때 처음으로 강이 보였다.

호텔은 나름 크고 깨끗하고 인테리어도 고급지고 자재도 좋은 걸 썼다는 걸 첫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늦게 예약하느라 리버뷰는 이미 마감된 상태여서 4만 원 저렴한 마운틴뷰 룸으로 들어왔다.

사진에서 본 리버뷰와는 달리 창문이 아주 작고 앉을 수 있는 테이블도 없었다.

하물며 소독을 너무 잘해서인지 방에서 유쾌하지 않은 냄새가 가득했다.

" 아... 머리가 너무 아프다. 이러면 힘든데..."

" 나도 그래. 우린 모든 게 너무 민감하고 예민해"

"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어디로 갈까?"


검색해 보니 이영자가 다녀갔다는 불고기 맛집이 있었다. 거기로 가기로 의기투합해서 10분 거리의 음식점으로 향했다.

거의 도착할 때쯤 내 눈에 스쳐 지나간 한옥으로 지어진 한식집이 있었다. 일단은 마음에 담아두었다.


불고기집에 도착하자 우린 눈빛을 교환했다.

"당신은 어디가 좋아?" 내가 먼저 물어봤다.

"아냐 당신 먹고 싶은 거 먹자" 역시나 남편의 대답은 한결같다.

또 시작이다. 둘 다 이 는 배려심.

"진짜 이번엔 당신이 원하는 데로 갈 거야" 나도 물러서지 않겠다.

" 아.. 난 뭐든 괜찮아. 당신 먹고 싶은 거"

휴우... 이쯤 되면 성격 급한 내가 먼저 백기를 들 차례.

" 건너편 한정식집으로 가자"

" 그러자"



그렇게 해서 오게 된 한정식집은 일단 인테리어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쫙 깔린 반찬을 하나하나 맛보며

" 오.. 괜찮은데?"

남편 입맛에 들었다. 성공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온 솥밥을 한 입 먹는 순간...

" 와~~~ 내가 지금까지 먹어 본 밥맛 중에 최고다!!"

더 이상의 찬사는 없었다.

약간 노란색 물을 들인 찰지면서도 밥알이 살아있는 '도대체 이런 밥을 만드시는 분은 어떻게 생기셨을까..?' 궁금할 정도의 밥맛.


결국 이번 여행의 최고의 행복이었다.

아무리 맛있는 반찬들이 한상 가득해도 역시 기본은 밥맛이었다.

한 번 맛본 사람은 잊을 수 없는 맛.

나도 이 밥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을 정도의 맛.

근데 왜 재수 없는 사람을 "밥맛이야"라고 표현했을까? 굉장히 궁금해진다.


한 번의 만남이라도 그 사람의 향기가 오래도록 기억되고 쉽게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건 그 사람의 외모나 스펙 때문만은 분명 아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에너지가 있고 그러면서도 어린애 같이 순수함과 위트가 있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다.


암튼 2023년 3월 1일은 내 인생밥을 먹은 날로 길이길이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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