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유 Feb 28. 2023

소모임의 써니

우리 동네 취미모임


이혼 후 나에게 주어진 혼자만의 자유로움.

먹고 싶을 때 먹고 치우고 싶을 때 치우고 뭐든 내 마음대로였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온전한 자유였다.

아무도 날 통제하거나 구속하지 않는...

얼마나 바랬던 자유였던가?


일주일에 4일은 심리상담사로 열심히 일하고 쉬는 날에는 혼자서 여행도 가고 영화도 보고 카페에 가서 책을 읽으며 커피도 마시고 전시회도 갔다.

나 자신과 친해지는 시간이자 오롯이 혼자서 사는 독립적인 삶으로 전환하는 과도기였다.


어떤 날은 눈을 뜨니 햇살이 너무 좋았다.

' 아... 바다가 보고 싶다'

바로 KTX 예약을 하고 바다 보러 강릉으로 훌쩍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바다의 파도를 바라보며 '이게 진정한 삶이지'라고 감탄했다.

또 어떤 날은 집에서 가까운 서래마을에 음악이 좋고 샌드위치가 맛있는 카페에 읽고 싶은 책을 들고 가서 마음껏 읽다가 일기도 끄적거리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서 하는 자유도 마음껏 누리고 나니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함께 어울릴 지인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던 차에

“선생님 소모임에 한 번 가입해 보세요”라고 후배 선생님이 권유를 해줬다.

“소모임이 뭐예요?”

“우리 동네 취미모임인데요. 동호회 비슷한 거예요. 앱이니까 앱을 깔고 가입하시면 될 거예요”

“아…. 그래요? 한 번 해볼게요. 고마워요”    

 

소모임이라….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날 바로 앱을 깔고 가입을 했다. 자기 연령대에 맞는 다양한 취미모임이 있었다.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채팅방에 들어가니 회원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닉네임은 써니라고 정했다.

난 새로운 세계에 들어간 듯 신기하기만 했다.




며칠 후 번개 모임이 근처에서 있었다. 난 바로 참석하기로 했다.

조금 늦게 모임 장소에 들어가니 7~8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신나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나의 출연에 모든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쏠렸다.

약간은 놀란듯한 표정이었다.

'왜 놀라지?' 속으로는 의아했지만  난 하나도 어색하거나 쭈뼛거리지 않고 당당히 내 소개를 했다.

"저 신입회원 써니예요"

나중에  놀랐던 이유를 한 오빠가 "까만 옷을 입은 키 큰 여자가 너무 씩씩하게 걸어 들어와서 그랬지"라고 말해주어서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반갑게 인사하며 반겨주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다들 친한 사이인듯했다.      


모임 장이 “우리 모임은 나이에 따라 바로 호칭을 언니, 오빠, 누나 이렇게 불러요”라고 설명해 주었다. 내 나이는 전체 중에서 중간 정도였다. 그래서 오빠, 언니, 친구, 동생이 다 있었다. 동생에겐 바로 반말을 했다. 이런 건 해본 적이 없었지만 의외로 더 쉽게 친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대학 때 하지 못했던 연합 서클모임 같아서 신선하고 좋았다. 20대에 하지 못했던 걸 결국은 50대가 되어서 하게 되다니.     


우리 소모임 방은 주로 같이 공연이나 전시를 보는 모임이었다. 친목 도모는 기본이고. 수시로 번개가 있었고 한 달에 한 번 정모가 있었다. 대부분 모임에선 술을 마셨다. 난 상담사로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술은 잘 마시지 못하지만, 관찰자처럼 앉아서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항상 상담사로서 차분하고 지적이고 우아한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게 싫증이 날 때여서 이런 일탈이 즐거웠다. 더 오버해서 밝고 강하고 쎈 여자처럼 행동했다. 거기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상담하면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기에 아주 딱이었다. 써니는 톡톡 튀고 천진난만하고 인기 만점인 회원이 되었다.


보통 정모를 하면 2차로 노래방을 갔다. 난 주로 록발라드를 불렀다.

주로 임재범의 <비상> <너를 위해> 신승우의 <사랑한 후에> 들국화의 <제발> 등 주로 남자 가수들의 노래를 불렀고 사람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내줬다. 그래서 그 당시엔 내가 엄청나게 노래를 잘한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혼하고 외로워하던 나에게 소모임은  활력을 더해준 놀이터였고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고 지금까지 하지 못한 문화생활을 원 없이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공연 티켓을 1만 원~3만 원에 구해와서 부담 없이 연극, 뮤지컬을 실컷 봤고 미술 전시회도 많이 다녔다.

어떤 모임에는 이상한 사람들도 많다고 하는데 우리 모임 사람들은 매너가 있었고 서로에 대해 인간적인 호의를 보여줘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한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니 서로 갈등이 생기기도 했고 이상한 오해를 하기도 했다. 그럴 때 상담사로서 객관적인 관점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모임에서 써니는 단순히 인기녀가 아니라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되어갔다.


내가 우울하거나 슬플 때면 채팅방에 솔직히 얘기하고 위로를 받았고 크리스마스에 혼자서 라면을 끓여 먹는다는 말에 우리 집 근처에서 급 번개를 쳐서 맛있는 음식을 먹도록 배려해주기도 했다. 그 당시의 나에게 가족이나 형제나 친구보다 더 공감대가 느껴지는 공동체였다.      


한 1년 정도 열심히 활동하다가 조금 시들해져서 그만두게 되었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그 시절의 써니는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은 내 면의 밝고 강한 본성이 그대로 표출된 날것의 나였구나....

50대에 이렇게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게 실컷 놀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어준 소모임. 

 본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주었던 공간.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를 한뼘 성장시켰던

고마운 곳이다.

지금은 친하게 지냈던 여동생 1명 말고는 연락이 거의 끊겼지만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그 시절의 써니를 기억하고 있을지….

가끔은 궁금하다.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책을 통해 내 정체성을 알게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