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상담을 하지 않는 삶이 낯설다
안식년을 앞둔 마음
심리상담을 시작한 지 13년!
몇 년 전부터 내 입에선 "이제 상담 그만하고 쉬고 싶어"란 말이 수시로 흘러나왔다.
오랜 시간 앉아서 내담자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하는 일은 내 몸 여기저기에서 통증으로 나타났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계속 듣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디스크가 있는 허리와 목은 항상 통증을 달고 살았다. 말하자면 많이 아픈 날과 덜 아픈 날이 있을 뿐, 안 아픈 날은 1년 중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으니.. 서서히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처음엔 "선생님 매일 힘든 얘기 들으시는 거 지치지 않으세요?"라고 묻는 내담자에게 "아니요 전 상담이 너무 재미있어요. 내담자분들이 치유되고 변화되는 걸 보면 너무 기쁘고요. 물론 신체적으로는 좀 힘들지만요."라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랬다. 몸은 힘들었지만 상담사라는 정체성이 나였고, 상담하고 있는 내가 좋았다. 새로운 내담자를 만나 그분의 내면으로 들어가 탐색을 하며 현재 힘든 문제에 대한 원인을 찾았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마음으로.
원인을 알면 내담자는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내가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힘든 거였군요." 과거의 상처 때문에 현재 관계가 더 힘들게 느껴진다는 걸 아는 게 문제해결의 key다.
그걸 찾아낼 때까지 난 마치 수사관처럼 질문하고 탐색하고 생각한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으면서 머릿속은 분주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정신과 병원에서 근무할 때 하루 6~7개의 상담을 하고 나면 뇌가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정도로 기진맥진했다. 그럴 땐 집에 가서 누워 1시간 이상 꼼짝도 못 하고 누워있어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상담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했기에 내담자 한분, 한 분을 나에게 보내주신 분이라 여기며 소중히 상담에 임했다. 그랬기에 상담은 나에게 떼어낼 수 없는 또 하나의 내가 되어버렸다.
암수술을 하고도 1달 만에 상담을 했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냥 그게 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느낌.
4년 반전 개인 상담실을 오픈하고는 계속 앞만 보고 달려왔다. 상담에 운영까지 해야 했으니 쉴 수가 없었다. 월세에, 관리비에, 감당해야 할 것들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10년 이상 일했으니 나도 안식년을 가져야지"
몇 년 전부터 상담을 안 하는 삶을 꿈꿨다. 조용한 시골에 가서 평안을 누리며 글 쓰는 삶을 동경했다.
상담을 안 하면 너무 자유롭고 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올해는 새로운 삶을 꿈꾸며 강릉으로 가려는 계획을 세웠다.
모든 게 계획대로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신기하게도 2월 중순부터 오래된 내담자들도 종결을 하고 새로운 상담 연결이 거의 없었다. 1주일에 10 케이스이상 하던 상담이 차츰차츰 줄더니 일주일에 3~4 케이스, 이번주는 1 케이스뿐이다.
'이렇게 상담이 없어지니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 느낌은 뭐지? 이상하다.'
상담을 안 하면 너무 자유롭고 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막상 상담을 안 하는 삶이 낯설고 생경하다.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이 느낌은 뭐지?
갑자기 늘어난 잉여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주일에 한 번 글쓰기 모임과 두 번 필라테스 수업이 있을 뿐, 남아도는 시간이 버겁게 느껴진다.
'내가 그동안 참 바쁘게 살았구나.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제 상담사라는 페르소나를 벗고 그냥 자연인 정민유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페르소나를 벗는 시간이 약간은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평생을 일한 회사에서 퇴직한 가장의 마음이랄까?
60살, 새로운 삶을 앞둔 마음은 결코 기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다.
새로운 시작은 이런 두려움을 감수해야 하는 거겠지.
하지만 주님께서 나에게 어떠한 삶을 계획하시고 계실지 기대가 된다.